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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읍제의 인식 전환

취미와 문화 2023. 1. 23.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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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一期 新羅의 土地 分給制度의 整備
姜鳳龍*강봉룡

녹읍 = 역역 수취는 일종의 학설로서 받아들여져야 함. 서술형 답안으로는 불안한 듯? 대충 교과서를 보니 ‘추측된다’ 정도의 서술임.

한 줄 먼저 요약 : 역역 수취는 진골 관료들이 알아서 한 것이지, 녹읍은 오히려 수조권만을 인정한 것일 수도 있다.

1. 신라가 확장 or 결합하는 과정에서 진골들이 지방 하호들을 실질적 지배를 하고 있는 형세가 됨.

2. 왕실에서는 진골이자 관료인 그들에게 관료 수행의 대가로 녹읍 지급(녹=작. 공적으로 경제적인 수취가 가능한 전토를 설정함. 본래 수취든 요역 동원이든 가능했지만, 공인은 오직 수취만 해준다는 제스쳐.)

3. 신문왕 때 문무관료전이 지급되었다. 현재 [촌락문서의 내시령답 = 내시령이 근속 중에만 받고 있었던 관료전의 일종]으로 정리가 되어 있다. 내시령답은 본래 주인없는 땅에 설정이 되며, 그곳을 촌주가 동원한 하호들이 공동 경작하고, 수확물을 해당 관료(내시령)에게 (전량) 바치는 것이다.

4. 신문왕 시기 녹읍을 폐지하고, 세조를 지급했다고 한다. 이는 즉 진골 관료의 지배지역에 대한 공인된 수조권(녹읍)을 빼앗고, 국가가 수조하여 진골 관료들에게 봉급으로 나누어준다는 뜻이다.

5. 경덕왕 때에 녹읍이 부활한다. 당연히 녹읍에서 국가가 대신 걷어 주던 세조 지급도 끝이다. 반복된 재해를 겪으면서 백성들이 유망하였기에 국가의 녹읍 땅 수취 관리가 어려웠으며, 관리들도 관수관급 식의 통제를에 반발했기에 세조운영을 그만두고 녹읍을 부활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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