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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14

한국현대사 - 해방 정국의 맥락 설명틀

1. 광복 직후(1945.8.15~9월 상반기) 건국준비위원회 갈등- 개요 : 한국 사람들의 '두루두루 잘 살면 된다'는 대동사상이 '사회주의'와 혼동되면서, 사회주의 이념이 한반도에 비교적 우세한 상황이었다. 한편 미국 측은 이런 상황을 경계하여 강력한 미군정의 통제 정책을 실시할 필요성이 있었다. - 우파 : 이승만을 주석으로 올리는 등 우익 인사들을 주요 간부로 설정해놓았으나, 실상은 국내에 있던 좌파들이 강성하여 더 지지를 받던 시절이기에 우파들이 열세 속에서 이탈을 하게 되었다. 중도 우파 안재홍의 탈퇴를 전후로 우파의 이탈은 가속화된다. 이렇게 이탈한 우파는 친일 지주세력과 합쳐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게 된다. - 좌파 : 건국준비위원회를 주도하게 된 좌파는 앞으로 들어올 미군정에 대비하여 '..

한국 근현대사 2023.06.30

식민지 근대화론의 맥락 정리

'식민지', '근대', '-화', '이론' 쪼개면 쪼갤수록 여러 갈래로 얽혀있는, 거대한 논쟁이다. 다만 대중적으로는 식민지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근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대-화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이론'인지 '객관'인지 혼돈 속이다. 크게 보아, 대중으로서 생각해볼 만한 주제는 이러하다. 1. 식민지 시절 한반도가 근대화되었다면, 그 주체는 누구인가? : 사실은 '그 당시 지배층이 곧 일본이니, 일본이 당연히 주체이다'라는 것은 곱씹어보면 꽤나 급진적인 주장이다. 그 당시의 조선사람들이 외양간의 소처럼 받아먹기만 하고, 똑똑한 '문명인'에 본질적으로 한참 못미치는 '미개인'이라면, 성립할 수 있는 주장이다. 2. 근대는 '좋은 것'인가? : 오늘날 우리는 '승리한' 것처럼..

한국 근현대사 2023.06.14

중추원의 변천 설명틀 - 중추원 신관제의 맥락을 위해

1. 고려의 중추원은 군사 기밀, 왕명 출납, 비서 기관이다. 중추원의 고위 관료는 추밀로 불리며 합좌에 참여하는 주요 직책이었다. 그러다 고려 말 몽골 침입 등을 겪으면서 밀직사로 격하된다. 2. 조선시대에 들어서자, 중추원이 전신인 밀직사가 다시 중추원으로 변한다. 중추원의 군사적 기능은 (의흥)삼군부 등으로 이전되어 흡수되고, 왕명출납과 비서기능은 승정원으로 분리된다. 3. 태종 1년인 1401년에 삼군부가 승추부로 변하며, 승정원을 흡수한다. 하지만 곧 업무가 분리되며 소멸된다. 4. 세종 때 다시 승추부로 부활했고, 세조 때 중추부로 바뀐다. 별도의 업무 없는 당상관(고위관료)들의 국왕 자문 기구로 이어져온다. 있으나 마나 별 지장 없었던 기관이었던 것. 5. 1차 갑오개혁 때 중추부가 중추원으..

한국 근현대사 2023.06.12

한국 근현대사 도입 시 '근대'라는 역사적 개념에 대한 설명틀

x축은 '시간', y축은 '기술(= 기술 개발을 위한 계몽)'. 대각선으로 뻗은 '국가의 발전' 인간은 시간을 지배할 순 없다. 시간이란 개념이 애초에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이라고 전제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손을 댈 수 있는 축은, 기술 측면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자연의 신비는 그 만큼 소멸된다. 이로써 인간은 한층 자연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만큼 '자연을 지배하여 통제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공간을 규격에 맞게, 인간에 편리하게 구획한다. 옛날에 산골짜기에 길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향촌의 집들은, 도시화되며 규격에 맞도록, 그리고 파악하기 쉽도록 정비된다. 계몽이란 비문명, 즉 미개한 인간들을 문명 측으로..

한국 근현대사 2023.06.12

위정척사론과 동도서기론에 대한 설명틀

먼저 필자는 가톨릭과 개신교인들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해두고 싶다. 역사는 역사이고, 필자는 초짜 역사 학습자이다. 그걸 감안하시길. 설명을 위해 단순화하고, 또 단순화했다. 1. 역사상 '근대'란 무엇인가? 먼저 초기 근대 서양사부터 간략히 보고 근대를 요약해보자. 루터를 필두로 해서 가톨릭에서 점차 개신교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서구세계에서 '천당으로 가는 문'의 수문장은 당연히 전통적으로 교황이었다. 중세 서양에서 속세 세계의 수장도 역시 교황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이 잔혹하게 마무리되고, 개신교의 등장으로 교황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존재가 되었다. 유럽의 각 소국들의 왕, 영주들은 교황이라는 권력체가 허약해진 틈을 타, 자기 영내에 권력을 공고화해나간다. 교황의 추락, 왕권의 ..

한국 근현대사 2023.06.08

박정희 특집] 박정희의 성장과 일본군 입대

오늘은 박정희의 성장 과정과 일본군 입대 과정까지 간략하게 살펴본다. 박정희는 굉장히 논쟁적인 인물이다. 당연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도 담겨있으니 유의바란다. 1. 출생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 농촌인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몰락양반이었다고 한다. 박정희의 아버지는 박성빈은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가 처형당할 뻔했다. 그리고 같은 해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박성빈은 학문의 길마저 포기하게 되었다. 한편 어머니 백남의는 빠듯한 집안사정에도 부지런히 집안 살림을 책임졌다고 한다. 2. 가난과 분리불안 박정희의 부모는 가난함 속에도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박정희 개인으로서는 강박적인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명을 하는 학자도 있다.(전인권, , 이학사, 20..

한국 근현대사 2021.10.28

[한국근대사 정리노트] 동학농민운동 (2) 공주취회, 삼례취회, 복합상소, 보은취회, 고부봉기

[동학농민운동 이전] 1) 1862년 임술농민봉기 : 임술농민봉기는 임술년에 일어났습니다. 달리 말하면 삼남민란이라고도 합니다. 2) 1871년에 이필제의 난 : 이필제의 난은 사상적 배경이 예언, 비기 사상을 기반으로 일어났습니다. 3) 1888~1893년 다수의 농민봉기가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1893년에는 많이 일어나게 되지요. [동학의 창시와 포교] 최제우의 동학 창시와 포교를 봅니다. 동학은 1860년에 용담정에서 최제우가 수련을 하다가 득도, 창시를 했습니다. 용담정은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 있습니다. 지금 용담정은 현대에 다시 지은 것인데, 지금 천도교에서 관리하는 건물입니다.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는데, 포교도 해야지요. 이 최제우가 동학을 포교할 때에 동학주문을 하지요. 강령주문, 부적..

한국 근현대사 2021.05.31

[한국근대사 정리노트] 동학농민운동 (1) 조선후기의 사회

[조선후기 사회와 동학농민운동] 1. 정치적 배경 : 영-정조 시대가 끝나고 풍양 조씨나 안동 김씨 등에 의해 세도정치가 도래하였습니다. 세도정치 시기의 가장 큰 문제는 매관매직입니다. "매관매직은 관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겁니다. 왜 관직을 돈을 주고 살까요? 관직을 얻으면 그 관직을 이용하여 투자한 돈의 몇 배로 뽑아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후기에 향촌사회 상호견제 기능이 떨어져서, 향리-수령-부농(신향)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정조 시기에 향약을 수령이 가져가게 되고, 수령은 견제하는 세력이 전혀 없어지게 되는 것이죠."(최태성의 고급한국사) 그런 배경 아래에서 조병갑이라는 인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2. 경제적 배경 : ‘삼정의 문란’. 삼정은 1) 전세 2) 공납 3) 역 그리고 4) 준..

한국 근현대사 2021.05.31

[한국근대사 정리노트] 독립신문과 독립협회

독립신문과 독립협회 독립신문의 창간자인 서재필은 본래 갑신정변 참가자로, 3일천하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연히 3일천하가 끝난 후에는 일본으로, 미국으로 망명길에 떠나게 되었죠. 그러던 와중에 국내에서 희망적인 소리가 들려오게 되는데, 바로 갑오개혁이었습니다. "1894년 조선에서는 갑오개혁으로 대개혁이 단행되고 있었으며, 동시에 갑신정변을 일으킨 급진개화파들에게 내려진 역적의 죄명이 벗겨졌다. 그리고 1895년 5월 [아관파천을 계기로 들어선 친러적 내각인] 박정양내각(朴定陽內閣)은 서재필을 외무협판으로 임명하고 귀국을 종용했으나 갑자기 귀국할 수 없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재필(徐載弼))]" 친일내각이 사라지고 들어선 박정양 내각은 최소한 미국인으로 귀화한 서재필에 대해 거부감..

한국 근현대사 2021.05.29

[한국근대사 정리노트]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4) 갑오개혁의 전개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납니다. 그걸 진압한다는 명목 하에 들어왔다가 청일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죠. 1894년에 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정부에서 청에 군사요청을 하고 청군이 들어오고,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도 바로 들어옵니다. 농민군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청과 일본이 들어와 있었으나, 이때는 이미 전주화약을 맺고 있던 시기라 굳이 군사적 개입이 필요 없었습니다. 이 때 일본이 청에게 먼저 제안을 하는데, 일단 양 국가의 군대가 ‘내란(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철수시키지 말고, 조선 내정 개입을 하고 군사를 주둔시키자 합니다.(이경원) 그러자 청이 군사동원이 필요없게 되었다며 돌아가자고 하였죠. 사실 일본 입장에서는 더욱 더 조선에 개입을 하고자 하는 상황이었고, 청나라는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었습니..

한국 근현대사 202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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