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한국근대사 정리노트] 동학농민운동 (1) 조선후기의 사회

취미와 문화 2021. 5. 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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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사회와 동학농민운동]

1. 정치적 배경 : 영-정조 시대가 끝나고 풍양 조씨나 안동 김씨 등에 의해 세도정치가 도래하였습니다. 세도정치 시기의 가장 큰 문제는 매관매직입니다. "매관매직은 관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겁니다. 왜 관직을 돈을 주고 살까요? 관직을 얻으면 그 관직을 이용하여 투자한 돈의 몇 배로 뽑아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후기에 향촌사회 상호견제 기능이 떨어져서, 향리-수령-부농(신향)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정조 시기에 향약을 수령이 가져가게 되고, 수령은 견제하는 세력이 전혀 없어지게 되는 것이죠."(최태성의 고급한국사) 그런 배경 아래에서 조병갑이라는 인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2. 경제적 배경 : 삼정의 문란. 삼정은 1) 전세 2) 공납 3) 역 그리고 4) 준조세적인 구휼제도 환곡이 있습니다. 삼정은 민생을 힘들게 하는 주 원인으로서, 삼정의 개혁을 동학농민군들이 주장했습니다. 

3. 사회적 배경 : 신분제가 동요하고 있었고, 양반 수는 증가, 상민과 노비의 수는 감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란 시기에 양반들의 권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 성리학이 교조화됩니다. 종교처럼 되었다는 것이죠. 성리학은 신분제를 유지시켜주는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이 성리학을 사익을 위해 이용하는 실태를 하곡 정제두는 이렇게 비판했지요. 

 

살아 있는 사람은 유용한 사물이 아닌 것이 없으니, 공연히 경적(經籍)만을 지켜서는 안 된다. 학문이란 것은 양심(養心)하는 방법이 아닌 것이 없으니, 글의 뜻에만 치우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와 같은 것은 실용적 학문이니, 음악(音樂)은 마음을 다스리어 방심하여 버리지 않게 한다. ... 각각 다른 것은 기(氣)의 끝이요 한결같이 같은 것은 성(性)의 근본인 것이다. 태어나면서 품부(稟賦)한 것이 아름답거나 악한 것은 생(生)의 기(氣)가 다른 때문이고 그 본원(本原)이 순수한 것은 품부하는 데에는 매이지 않는 것이다.
... 주자(朱子)의 학문은 그 설이 또한 어찌 일찍이 선()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치지(致知)의 학()만이 그 공부가 우직하고 완급한 구별이 있어서 그 체()에는 나뉘고 합해지는 간격이 있었을 뿐이나, 그 실은 다 같이 성인의 학을 하는 것이었으니, 어찌 일찍이 착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뒤에 와서 배우는 이는 허다히 그 근본은 잃고 오늘날의 학설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주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곧 주자를 빌리는 것이요, 주자를 빌릴 뿐만 아니라 곧 주자를 부회(傅會)함으로써 그 뜻을 성취하고 주자(朱子)를 끼고 위엄을 지어 사사로움을 이루는 것이다. - 정제두, 하곡집9, 존언 하, 학문자양심지방

주자의 학문은 어느 새 자기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이고, 탐관오리들도 그럴듯한 주자학적 이유를 붙여 나쁜 짓을 행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후에 나오는 동학농민군들이 성리학 전체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후 동학농민군들이 구체제, 신분제라든지, 그런 것들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지향했다고들 하는데, 농민군의 지향에 대해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지요. 농민군은 오히려 근대사회가 아니라 반근대를 지향했고, 그것은 오히려 농민군은 자기들의 자율적인 의식세계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유교적 이상세계로서 일군만민(一君萬民) 사상이 있었습니다. 맨 위에 왕이 있고, 왕 아래에 백성들이 많습니다. 일군만민은 왕이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을 다스리고, 백성들도 왕에게 요청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왕과 백성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한 사회를 일군만민 사회라고 이야기됩니다. 이것을 원한다는 것은, 동학농민운동 시기에 왕과 백성 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방해하는 게 간신과 나쁜 탐관오리라는 이들이었죠."(이경원) 동학농민군의 지향은 역시 왕을 바꾸고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라, 탐관오리들을 처벌하자는 것이었습니다. 

 

* 그 외의 학문들

1) 양명학 : 양명학이 들어옵니다. 대표적인 국내 양명학자로는 하곡 정제두가 있습니다.

2)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의 정신을 담은 실학.

 

* 삼정의 문란

1) 전세는 조선 후기에 영정법이 정착했고,14두를 조세했습니다. 도결(다른 필요한 세금을 전세에 부가적으로 부가), 포흠(횡령으로 필요해진 부족분을 걷음) 등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2) 공납은 조선후기에 대동법이 되어 112두가 됩니다. 공납은 본래 특산물을 내었는데, 쌀을 내게 된 것입니다. 전세와 공납은 쌀로 내는 전정이라고 합니다.

3) 역은 균역법으로 바뀌어 1년에 옷감 1필을 내도록 합니다. 이러한 역은 군정이라고 합니다. 군정에 대표적인 폐단은 황구첨정, 백골징포, 족징, 인징 등이 있습니다. 

4) 특히 환곡은 조선후기에 준조세화 되면서 고리대화됩니다.(통환)

 

4. 종교적 배경 :

 1) 각종 사상들 : 예언사상, 또는 도참사상, 비기(이씨 왕조가 망한다는 등), 미륵사상,

 2) 서학(천주교).

 3) 동학 : 서학에 반대하여 만들어진 동학. 동학을 창시한 사람은 최제우. 결국 최제우는 혹세무민 - 세상과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하여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한편 그 후임자 최시형은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지었습니다. [동경대전은 경전, 용담유사는 찬양가] 동학은 기본적으로 인내천과 후천개벽, 평등사상 주창.

 

각종 사회적 모순들에 대하여 민란들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1. 홍경래의 난(19c 초 평안도) : 평안도 지역 - 서북지역 차별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데, 그 주도층이 몰락양반들 중심

2. 임술농민봉기(19c 중반) : 임술농민봉기는 경상도 진주를 중심으로 농민 봉기 확산.

3. 동학농민운동(19c 후반) : 동학농민운동은 정치 경제 사회에서 탐관오리들의 반봉건, 반외세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종합하자면 19세기는 민란의 시대. 

 

 

* 참조 : 이경원 - 한국근현대사회의 역사와 문화 /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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