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한국근대사 정리노트] 동학농민운동 (2) 공주취회, 삼례취회, 복합상소, 보은취회, 고부봉기

취미와 문화 2021. 5. 3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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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이전]

1) 1862년 임술농민봉기 : 임술농민봉기는 임술년에 일어났습니다. 달리 말하면 삼남민란이라고도 합니다. 

2) 1871년에 이필제의 난 : 이필제의 난은 사상적 배경이 예언, 비기 사상을 기반으로 일어났습니다. 

3) 1888~1893년 다수의 농민봉기가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1893년에는 많이 일어나게 되지요.

 

[동학의 창시와 포교]

최제우의 동학 창시와 포교를 봅니다. 동학은 1860년에 용담정에서 최제우가 수련을 하다가 득도, 창시를 했습니다. 용담정은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 있습니다. 지금 용담정은 현대에 다시 지은 것인데, 지금 천도교에서 관리하는 건물입니다.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는데, 포교도 해야지요. 이 최제우가 동학을 포교할 때에 동학주문을 하지요. 강령주문, 부적, 검에 새겨진 노래들. 천주와 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동학의 부적
(상제)에게 영부가 있으나, 그 이름은 선약(仙藥)이오. 그 형상은 태극이오. 또 형상은 궁궁(弓弓)이니, 나의 이 부를 받아 사람들을 질병에서 구제하고, 나의 이 주문을 받아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역시 장생하여 포덕천하할 것이다. 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受我呪文, 敎人爲我, 則汝亦長生, 布德天下矣”(布德文東經大全)

 

결국 최제우는 체포됩니다. 체포되었다 석방되었다 여러 번 반복하다가 1864년에 대구에서 사악한 학문으로 확정되고 처형됩니다. 결국 동학을 위기를 맞게 되고, 지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제2대 최시형이 등장하고 포교를 재개하게 됩니다.

지하 포교 시기는 1880년대 중반까지를 말하는데, 강원도 산간, 경상도 북부 지역에서 포교를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18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서 동학을 포교하게 됩니다. 최시형이 포교를 하는데, 이 때에는 동학교도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고, 그것에 비례해서 수령의 탄압도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령이 어떤 식으로 탄압을 하게 되면, 동학 교도들의 집에 가서 몽둥이로 가사를 헤집고, 재물을 가져가는 식으로 했던 것이죠. 그래서 당시 가산을 탕진한 교도들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점점 교도들의 집안사정이 나빠지게 되는데, 그래서 최시형이 교도들은 서로서로 도와주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이게 최시형의 동학 포교내용에서 강조되는 것입니다.

 

통문 무자(1888년)
, 여러 사람들은 어찌 노래와 춤에 가산을 탕진하면서도 친족의 굶주림을 구하는 것을 즐거이하지 않는가. 어찌 술과 도박에 재물을 걸면서도 이웃의 곤궁을 돌아보는 것을 즐거이 하지 않는가. 일일이 마음을 보니 잔인, 각박함이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무릇 우리 도인은 연원(淵源)을 같이 받았으므로 마땅히 형제와 같다. 형이 굶주리고 아우가 포식하는 것이 옳은가. 아우가 따뜻하고 형이 차가운 것이 옳은가.

통유십조(通諭十條, 1891)
. 빈궁상휼(貧窮相恤)
같은 소리로 서로 응하고 같은 기()로 서로 구한다. 고금에 통하는 의()가 있는데 우리 도()에 이르러 그 도리가 더욱 나타나는데 환난상구(患難相救), 빈궁상휼(貧窮相恤) 역시 선현의 향약에 있다. 우리 도()에 이르러 그 옳음이 더욱 중요한데 무릇 우리 같은 도의 사람은 한가지 약속을 따라 상애상자(相愛相資)하여 혹 규칙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할 것.

출처 : 이경원 교수 가톨릭대학교 강의

 

최제우는 동학의 주술성을 활용했다면, 최시형은 교도들이 어려우니 서로 도우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교조신원운동]

사정이 어려워진 동학교도들이 교조신원운동, 즉 최제우의 억울함을 푸는 운동을 합니다.

 

1. 공주취회 : 189210월 공주에서 교도들이 모여 최제우에게 씌워진 악한 학문을 한다는 프레임에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2. 삼례취회 : 189211월 삼례에서도 모임을 가졌습니다. 전라도 감영에 거의 비슷한 내용의 억울함을 내보였습니다. 삼례는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쯤 되는 곳입니다. 

 

3. 복합상소 : 1893211일입니다. 공주취회부터 복합상소까지는 동학이 이단이 아니므로 탄압을 중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복합상소가 열릴 무렵에 다른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서울에 동학교도들이 대자보 같은 방문을 붙이는데, 서양인들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내쫓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에 동학이 옳다는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즉 서울에 척왜양 방문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4. 보은취회 : 1893311일입니다. 보은취회는 보은에 전국의 동학교도들이 모여 전면적으로 척왜양창의의 깃발을 내걸었던 취회입니다. 다시 모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보은이라는 곳에 모였습니다. 이 보은은 동학 교단의 지도부가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이들을 몰아내자는 척왜양창의 - 왜놈과 양놈을 배척하고 의를 일으키자라든가, 보국안민 - 나라를 보호하고 안민, 백성을 편안케 하자. 제폭구민 - 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하자 등등의 반봉건 반외세의 정치적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더라는 얘기죠. 이게 보은 집회 단계의 모습이에요.

 

5. 고부봉기 : 고부봉기 사건이 터진 거예요. 대충 연결돼요? 그런데 지금 아까 전봉준이 뭐라고 했어? 동학의 접주였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전봉준은 이와 같은 동학의 움직임과 이와 같은 동학의 지도 조직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동학을 농민 봉기와 결합을 시켰기 때문에 이 사건은 다른 지역의 봉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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