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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37

푸코 - 임상의학의 탄생, 독학 1.

독학입니다. 오류가 많으므로 인용하기 위험합니다.영문판 본문 첫페이지.1. 질병을 공간화하는 의학사. 질병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인류사상 동질적인, 비슷한 증상을 관찰하면서 이루어졌다. 기침, 열을 보고 폐렴이나, 감기를 유추해낸다. 근래에는 다운된 기분과 도파민의 부족, 우울감의 지속 등으로 우울증을 확인해낸다. 언뜻 귀납적이라고 보이지만, 실제 질병을 겪고 있는 환자의 신체 증상을, 의학 교과서를 바탕으로 연역해내는 것에 가깝다. 의학 교과서를 바탕으로 질병에 대해 탐구하는 방식이 인류사에 어느 새 정착되었는데, 질병의 위치, 즉 부어있는 곳, 상처입은 곳, 심지어는 뇌의 반응 부위까지 공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인류사의 해부학적 지식은 우리 몸의 [공통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의..

서양사 2025.01.23

뉴턴 독학 1

뉴턴에 관련된 레포트를 쓰는 데 이 글을 참고하지 말라. 틀린 정보를 감수하는 독학 노트이다. 영어본 73페이지.서문.1. 고대인들은 기계학으로 자연현상을 탐구하고자 했다. 여기서 기계학은 메카닉스(mechanics), 물리적인 운동의 원리를 말한다. 고대 자연철학자들이 물이나 불 등을 만물 공통의 근원들을 정지한 것으로 설정했다면, 운동은 질적 변화 혹은 양적 변화로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봤던 것 같다. 이 시대가 16~17세기 잉글랜드의 튜더 시대인가? 이 시대에는 대충 인클로저가 충분히 진행되었을 무렵이고, 농촌의 인구를 흡수한 도시가 발달하였던 때이니, 기계학이라는 것이 기계의 움직임까지 염두에 두고 사용된 것일지 모른다. 기계학은 어쨌건 운동에 관한 것이고, 그 운동은 무언가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서양사 2025.01.06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강의 후기.

1. 계몽주의자들의 전쟁준비 과정에의 저자의 불만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지원과 준비, 전술의 수학화, 공고화가 그 이전의 전쟁론들의 주를 이루었으니, 거기에는 막상 불확실하고 공포스러운 전장 속의 이야기는 전혀 없는 것이다.인간의 의지, 통찰과 지성이라는 문제가 고려대상이 된 것이 이 저술의 의의이다.전쟁의 적절한 지휘관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무기의 양산과 전술의 체계화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대장장이만 많고 좋은 검사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휘관에게는 대포의 원리나, 철이 녹는 점을 알 필요가 없다. 그것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간 병사들과, 전장 바깥의 정치를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지휘관이 마주한 문제이다.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 각지의 국지전이 벌어지는데, 그 범위가 엄청나게 넓기 때문에 모든 ..

서양사 2024.12.24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강의 1강 후기.

1. 군국주의와 정치"정치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하다보니,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걸 정치가 가로막는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 같다.정치를 군인들이 장악하는 군국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에 대해, 멸절주의 등 다양한 극단의 표현이 별도로 필요하다기보단, 저자에 따르면 꽤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지.2.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의 의의에서계산적이고 수학적인 전쟁론에서, 우연 속 인간의 의지와 천재를 인정하는 경향으로 이행한 저자가 사상사적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단 걸 보았다.계몽주의 유행 속 낭만주의의 대두, 나폴레옹의 등장이 이 전쟁론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역사적으로 연결이 된다.예비군 훈련에서 정신무장을 강조해왔던 연원을 올라가면, 낭만주의 전쟁관에서 나온 걸까.끝.

서양사 2024.12.23

천주교 성직자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

천주교 성직자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각종 설이 다양하니, 정리해두자. 1. 제례의식의 연장 - 기독교 제례의식 동안에는 성교가 금지되었던 것이, 성직자에게는 계속해서 이어졌다는 설. 2. 교회 재산 상속 차단 - 교회의 상속이 일어나면 세속권력화되기 때문에 자손을 만들지 않도록 규제했다는 설. 3. 클뤼니 수도원 세력의 성직 독점의 일환 - 교황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수도원 개혁세력들이, 자신들의 고위 성직과 교황직에 대한 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를 추가했다는 설. 4. 로마에서 기독교도를 한창 죽일 때, 가족이라는 약점을 만들지 않고 신앙을 결사 수호하기 위해 그렇다는 루터의 설.

서양사 2023.02.15

19세기 이탈리아의 통일

다시 거슬러올라가 이탈리아 통일의 배경은 멀리 보자면 1815년 빈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빈 회의 이후 사르데냐, 허리를 가로지르는 교황령,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령, 파르마와 모데나 등은 오스트리아의 간접지배령이었습니다. 이탈리아는 1848년 혁명을 실패하는데, 일단 카르보나리당과 마치니의 좌절을 봤습니다. “2월 혁명에서 카톨릭의 자유주의나 마치니의 이상주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민족주의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탈리아 통일의 과업을 사르데냐의 현실정치가인 카보우르(카부르, 1810~1861)의 손으로 넘어갔다. ... 귀족출신인 카보우르는 1850년 재상으로 임명되자 그는 첫째로 사르데냐의 국력배양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산업을 장려하고 군대를 개편하는 등 개혁을 단행하고, 둘째로 인구 ..

서양사 2021.08.18

[19~20세기 영국의 발전] 선거법 개정

영국의 변화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1832년 선거법 개정이다. 기존에는 소수의 지주층만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당시의 집권정부인 휘그 정권이 결국 1차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앞서 7월 혁명의 결과로서 언급을 했다. 1. 재산상 중간계급까지만 선거권을 확대한다. 2. 부패선거구를 개정한다. [19세기 영국사 - 차티스트 운동] 1차 선거법 개정은 아직 인구의 2할도 안 되는 이들만이 선거권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1834년부터 인민헌장운동이 시작된다. 이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남자 보통 선거권’. 2. 당시 노동대중들은 세비를 지급받지 않아 정치에 진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의원에게는 세비를 지급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 연대 제1차 1832년..

서양사 2021.08.18

[민족주의와 각국의 발전] 프랑스 제2제정과 제3공화정

1. 제 2 제정 프랑스 2월 혁명의 결과 성립된 국립작업장의 노동자들은 루이 블랑 등 사회주의 세력이 선거에서 대패하자, 일자리를 잃었다. 즉, 국립작업장은 폐쇄되었다. 그러자 소위 1848년의 '6월 봉기'가 일어나게 되었다. 6월 봉기의 결과 공화제 헌법이 제정되고, 보통선거, 단원제, 대통령 중심제 아래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1849년 1월에 의회가 해산되고 5월에 선거가 왕당파 중심의 질서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게 되어 선거법을 개정하였는데, 그 내용에는 하층민의 선거권을 박탈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대통령 재선 금지 개헌까지 제안하게 되는 바, 의회에서는 부결되었다. 나폴레옹은 1851년 12월 2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52년 1월에 신헌법을 만드는 바, 독재적 통치권을 가져갔다...

서양사 2021.08.18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발전] 빈 체제, 7월 혁명과 2월 혁명의 영향

1. 1830년 7월 혁명 1) 1830 네덜란드로부터 벨기에 독립 :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의 종교재판 강화, 가톨릭 강요 등의 조치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오렌지공 윌리엄이라는 사람 주도 하에 1579년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하여 네덜란드 독립에 성공했다. 네덜란드가 정식으로 독립하게 된것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었다. 네덜란드는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억제의 사명을 띠고 오스트리아령 벨기에를 할양받았다. 그 결과 네덜란드 왕국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벨기에는 가톨릭인 한편 네덜란드는 고이센-프로테스탄트 지역인데다, 언어와 관습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네덜란드는 항해 산업인 한편, 벨기에는 농업과 공업 중심이었다. 네덜란드 왕 윌리엄 1세는 네..

서양사 2021.08.18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발전] 2월 혁명

1848년 7월 왕정은 은행가, 대상공업자, 일부 부농들을 위한 정권으로서, 선거권이 차등분배되어 있었다. 게다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고되게 되고 노동자는 단결하게 된다. 결사를 조직하고 사회주의가 확산되었다. 그에 반해 7월 왕정은 1834년에 노동자에 대한 반 단체법을 제정하게 된다. 7월 왕정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갔으며, 그 불만은 선거권 확대 요구로 수렴되었다. 프랑스 초기 사회주의자 중에 루이 블랑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7월 왕정을 비판하여 부르주아적 정치에 반대한 사람으로서, 산업사회의 경쟁 및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비난했다. 보통선거를 통한 노동자 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을 주장했으며, 이라는 저서에서 국립공장 건설을 주장했다. 그 결과 7월 왕정 특유의 국립 작업장..

서양사 202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