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푸코 - 임상의학의 탄생, 독학 1.

취문 2025. 1. 2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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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입니다. 오류가 많으므로 인용하기 위험합니다.
영문판 본문 첫페이지.

1. 질병을 공간화하는 의학사.
  질병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인류사상 동질적인, 비슷한 증상을 관찰하면서 이루어졌다. 기침, 열을 보고 폐렴이나, 감기를 유추해낸다. 근래에는 다운된 기분과 도파민의 부족, 우울감의 지속 등으로 우울증을 확인해낸다. 언뜻 귀납적이라고 보이지만, 실제 질병을 겪고 있는 환자의 신체 증상을, 의학 교과서를 바탕으로 연역해내는 것에 가깝다.
  의학 교과서를 바탕으로 질병에 대해 탐구하는 방식이 인류사에 어느 새 정착되었는데, 질병의 위치, 즉 부어있는 곳, 상처입은 곳, 심지어는 뇌의 반응 부위까지 공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인류사의 해부학적 지식은 우리 몸의 [공통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의학은 끊임없이 발전해나가고, 의학 교과서는 개정된다. 몸의 공통적인 구조라고 하는 것은 의학과 생물학의 지성의 권위에 따라 변화되고, 지성의 산물인 책과 그림을 통해 그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육체의 공통적인 구조가 성립되어 있지 않았던, 전근대 시대에는 어떠했을까?
  1) 연역 :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성리학적 세계관과 도학적 세계관이 결합되어 있는, 혈도와 기라고 하는 민간의학이 있었다. 사상적인 인간상을 결정해두고, 그에 맞추어 증상을 보아 처방을 맞추는, 구조적으로는 현대 의학과 유사하다고 보여지는 연역적인 방식이 있었다. 한편 우주와 인간, 신체 요소가 연결되어 있다는 '천벌을 받았다'라는 형식의 사고방식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2) 귀납 : 전염병이 퍼졌다고 해 보자. 같은 증상의 질병이 한 마을에 퍼져있을 터이다. 우리집과 이웃집은 서로의 질병이 같다는 것을 공감하는데, 그것의 대처방법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존에 알고 있던 일상적인 방법 - 열이 나므로, 차가운 것을 댄다 - 같은 것들을 시도한다. 하지만 편도에 문제가 있든, 감기에 걸렸든, 폐렴에 걸렸든, 온열증상에 걸렸든 간에 열이 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 만큼 민간요법에도 여러가지 접근이 있을 터이다.
  식재료에 문제가 생겼다고 치자. 산나물이 맛이 좋다고 생각해서 마을사람들과 나눴고, 그걸 먹자 배탈이 난다. 알고보니 맛난 산나물과,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독초가 섞여있었던 것이다. 산나물에 대한 백과사전이 없거나 지식이 부족하였기에, 이 사람은 유사한 것이 서로 유사한 성질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맛도 쓰고, 색깔도, 모양도 비슷하다면 유사성의 원리에 따라 당연히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발상이다. 어떤 실체의 속성이 같다면, 역시 유사한 물체라는 식의 접근인 것이다.
  다음으로 질병과 환경을 연결지으려는, 쉽게 말해 이열치열이라는 관념이다. 몸에 열이 나고 감기에 걸렸다고 할 때, 우리까지도 매운 짬뽕을 먹고 감기를 떨쳐내려고 하곤 한다. 이것은 질병의 속성과 환경의 속성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형식이다.
  마지막으로 음식이나 약초가 신체부위와 닮았으면, 신체 부위 보강에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호두가 뇌를 좋아지게 한다거나, 순대나 간을 먹으면 내장이 좋아진다거나 하는 식이다.
  위와 같은 민간요법적인 발상들을 푸코는 "공감의 원리"라는 표현으로 사용했다.

  근대 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여 그것에 처방하는 형식으로 발달되어 왔고, 질병의 원인을 파악해나가는 과정에서 몸의 지도를 세분화해나가는 작업을 해 왔던 것이다.

2. 19세기에는 해부학이 발달되어왔고, 해부학적 지식이 병리적 상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보인다. 해부학적 지식은 인간 육체의 질적 변화인 병을 공간으로 환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바이러스의 침투 경로 등이 시각화되고 마스크를 끼게 하는 공중보건의 조치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인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것을 제거해나가는 형식의 의학은 신체와 질병의 관계를 시각적인 관계도로 정립되었다. 정립 과정에서 지식의 권력이 작동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육체 반응을 시각화하여 분해하는 과정은 추상화된 [질병에 걸린 몸]과 [정상적인 몸]을 이원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환자의 몸], [질병에 걸린 몸], [정상적인 몸]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파악한 뒤, 약을 처방하거나 수술하기를 결정한다.
  전근대에는 추상화된 질병에 걸린 몸이라는 관념이 시각화된 상태가 아니었다. 고통과 열, 어쩔 줄 모름 등의 여러가지 질적 변화는 우주의 작용과 연결되거나 신학, 혹은 성리학 등의 정치사상과 연계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신을 닮은 존재라거나, 인간은 선한 성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그것을 되찾으면 된다거나, 거대한 우주와 신체라는 소우주를 관련시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식이다. 만약 하늘에 상서로운 조짐이 떠오른다면, 우리의 신체 역시 뭔가 이상이 생길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의 장기들은 우주의 원리처럼 서로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공감의 원리)
  한편 근대 의학은 전근대의 억지스러운 연결성을 부정한다. 대신 각 문제 원인이 된 부위를 찾아 그것을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려놓는 데에 주력한다. 문제 원인인 부위가 발견되기까지, 의학 교과서를 지도 삼아 그것에 정치된 신체 부위를 참조하여 환자의 몸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진다. 수직적으로는 열의 온도가 높은지 낮은지, 수평적으로는 발 시림이 고혈압과 관련이 있는지 등 탐사의 과정은 인과뿐만 아니라 각 문제들 간의 네트워크까지 고려한다.
  그런데 이 역사적 과정을 '의학 발달의 역사'로, 의학의 진리를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에는 비판적이어야 한다. 의학 역시 역사적 구성물로서 고찰되어야하며, 단순 과학적인 발전 과정이 아니라, 의학 지식의 권력이라는 측면에 주목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인체를 탐사하며 인류의 지식을 발굴해나가는 고고학자가 아니라, 지식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주체로서 탐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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