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 1972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돌입과, 국민공회의 구성과 공화국의 선포] 애국은 공화주의적 열정과 국민적 통일성이라는 정신은 서로 결합하였고, 왕정의 비겁함은 바렌 도주사건으로 일찌기 비쳐졌음. 그런 속에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적대심은 국민적인 공화정으로의 열정으로 연결되어 갔음. 1792년 7월 하순 프로이센군의 사령관 브라운슈바이크 공이 파리 시민에 대한 매우 위협적인, ‘파리 시민을 반드시 군사적으로 굴복시키겠다’는 선언을 발표하자, 이것 때문에 파리 시민의 혁명열이 고조되었음. 그리고 파리의 각 지구의 대표들은 합법적 시 행정기구 대신 '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 왕궁과 친위대를 공격하여 학살. 프로이센군 사령관 브라운슈바이크 공의 선언 이 있고 나서 얼마 ‘국민공회’의 소집을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