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서양고대사 정리노트] 클레이스테네스

취미와 문화 2021. 4. 2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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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사 정리노트] 클레이스테네스

 

* 완쌤 : '5도'가 '부족'해 - 500인회, 도편추방제, 부족제 개편


부족제 개편 : 혈연, 지연과 관계없는 10개 부족(필레)으로

 

 

  50여년 간의 참주정은 끝나고 새로 아르콘을 선출할 시기가 돌아왔음. "히피아스의 추방(기원전 510)으로 참주정치가 쓰러지자, 이를 타도하는데 협력하였던 귀족과 평민 사이에 다시 대립과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 분쟁에서 추방된 귀족의 한 사람인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로 귀환하여 평민의 지지를 획득하고, 스파르타의 힘을 빌려 저항하던 반대파 귀족을 분쇄하고 민주적 개혁에 나섰다. 그의 개혁의 목표는 종전의 혈연적, 지연적 유대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아테네의 전시민에게 평등한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민석홍, 서양사개론)

 

아테네는 그 이전에도 이미 대국이었지만 이제 참주로부터 해방되자 한층 더 강대해졌다. 당시 두 인물이 아테네 정치 주도했는데, 알크마이온 가문의 클레이스테네스, 또 하나는 역시 명문 귀족출신인 테이산드로스의 아들 이사고라스였다. 선임 아르콘 자리를 두고 권력투쟁을 벌이던 중에 클레이스테네스는 자신이 열세에 몰리자, 평민층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그는 4개의 부족으로 되어 있던 아테네 시민을 10개 부족으로 개편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출처 : 김덕수 교수님)

 

  그리스식 필레(부족)’ 단위는 지역적인 분포와 혈통적인 분포인지 분명치 않은, 그리스 특유의 단위였음. 폴리스 내에 4개의 필레가 있었는데 클레이스테네스는 10개로 늘렸다는 것. 10개 부족으로 편제하는 과정이란, 기존에 있던 부족을 자르는 차원이 아니었음. 기존의 필레의 귀족들의 위세로부터 벗어나, 민중(데모스, 평민, demos)의 역량과 자신감이 증대되는 결과를 낳은 것임. 동시에 아티카 지역의 가장 작은 지역은 데모스(demos)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티카 지역을 시내-해안-내지로 구분. 그렇게 [(시내 데모스+해안 데모스+내지 데모스)*10개 단위 = 10개 필레]로 재편된 것인데, 클레이스테네스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재편했을까

 

* ('시내' 데모스 a + '해안' 데모스 a + '내지' 데모스 a) = 트리티스
* ('시내' 데모스 a + '해안' 데모스 b + '내지' 데모스 c) * 10 = 1개 필레

 

  트리티스 자체적으로는 지역성이 있었지만, 필레를 구성하는 단계에서는 지역성이 없음. 필레(부족)에서 지역성이라는 것이 파괴되어버리는 것 본래 데모스의 멤버는 거주지 지역을 기준으로 데모스 명부가 작성이 되었음. 그리고 이 사람이 다른 데모스로 이사를 가도 이 사람의 호적은 그대로 맨 처음 데모스에 남아있음. 그래서 데모스의 이름을 계속해서 유지하게 되는데, 아테네 시민들은 나는 어느 데모스 소속 누구라며, 데모스 이름으로 신원을 밝히게 됨. 데모스와 필레에 비해 트리티스의 기능은 미약했음. 이는 데모스를 필레로 편성하기 위한 임시 행정적인 단위이기 때문. 그리고 필레 단위마다 신전, 사제, 민회, 부족의 관리를 뽑았고, 필레는 군사단위로도 운용이 되었음.

 

 


 500인 협의회의 구성

 

 

이렇게 필레가 구성된 후, 500인 협의회(boule; 부울레)가 창설되었음. 솔론 시기의 400인회는 기존의 혈연적 필레에 바탕했기 때문에 폐지된 것으로 보임.

 

* 50명*10개부족=500인회.

 

...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인민은 클레이스테네스를 신뢰하였다. 그 후 인민의 지도자로서 참주를 몰아낸 지 4년 만에 이사고라스가 아르콘 직을 맡은 해(기원전 508), 클레이스테네스는 우선 모든 사람을 네 개의 부족 대신에 열 개의 부족으로 분산시켰다. 모든 사람이 섞이게 하여 더 많은 이들이 국가 체제 안에서 자기 몫을 가질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때부터 가문의 배경을 묻고자 하는 자들이게 “[기존에 4개 필레 일 때의] 부족에 따라 조사하지 말라라는 대답이 생겨났다. 그 다음에 그는 각 부족에서 50명씩 선발하여 협의회 구성원이 500명이 되게 하였다. 전에는 [네 부족에서] 100명씩 선발하여 400명이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인의 정체>>(출처 : 김창성, 사료로 읽는 서양사 1)

 

  500인 협의회의 일은 무엇인가? 민회의 결의할 사안와 의사일정을 마련함. 그리고 이 협의회는 민회에서 통과된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실무 기관으로 존재했음. 기본적으로 민회라고 하는 것은 전체 시민들이 모여 결정만 하는 것이지, 실무기관이 아님. 아테네의 재정, 전쟁, 외교 등의 실무를 맡은 것으로 보임.(서양사개론)

 


도편추방제

 

 

  아테네의 데모스들이 1년에 한 번씩 봄에 모여서 도편추방 투표(오스트라키스모스; 오스트라키즘)를 할 것인지 안건에 대해 먼저 투표를 진행. 도편이란 참주가 될 소지가 있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총 투표한 자가 6000표 이상 넘을 경우 도편추방제가 효력이 있으며, 최다 투표자를 추방.

 

필로코로스는 그의 책 3권에서 도편추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선 인민이 여덟 번째 당번 기간 전에 도편추방을 실시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예비 투표를 한다. 그렇게 하기로 가결하면, 널판으로 아고라를 두르고, 열 군데에 입구를 남긴다. 사람들이 그 입구를 통해 부족별로 들어와서는 글을 새긴 면을 아래로 하여 자신의 도편을 내려놓는다. 이 과정은 아홉 명의 아르콘과 협의회가 주재한다. 도편이 계수되면 최다이면서 6000표 이상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고소인이든 피고이든, 관련된 송사의 의무를 열흘 내에 정리하고 10년간 도시를 떠나야 한다.(후에는 5년이되었다.) 그 기간에 그는 자신의 소유물로부터 나오는 수입을 받을 수 있다.” - 뮬러 외, <<그리스 역사가 단편>>, 파리시스(parisiis), 1841,79b.
아르콘들은 먼저 그곳에서 전체 도편 수를 헤아린다, 만약 6000표에 미달하면, 오스트라키스모스는 무효이다. - 플루타르코스, <<아리스테이데스>>

 

  도편추방제는 아테네에서 참주가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

 

* 종합 : "이제 모든 시민은 정부를 자기와 무관한 지배기구로 보지 않고 자기 자신이 그 일원으로서 직접 참여하는 시민공동체와 동일한 통치 기구로 간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테네 시민들 사이에는 다른 폴리스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자부심과 애국심이 싹트고 자라나게 되었다."(서양사개론)

 

 

 

* 출처 : 민석홍 - 서양사개론, 김창성 - 사료로 읽는 서양사 1, 김덕수 교수 서양고대사 서울대학교 강의, 류성완 2021 ebsi 수능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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