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서양고대사 정리노트] - 스파르타(라케다이몬)의 성립, 리쿠르고스 체제

취미와 문화 2021. 4. 2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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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사 정리노트] - 스파르타(라케다이몬)의 성립, 리쿠르고스 체제

 


1. 스파르타의 성립

 

 

  아테네의 귀족사회가 동요했던 것과 달리, 스파르타는 꽤 안정적인 곳이었음. 도리아족인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라코니아 지방에 자리하게 되었는데, 정복민과 피정복민 간의 관계가 스파르타 특유의 시민등급을 나누게 되었음. 

1. 스파르티아테스(Spartiates) : 스파르타 시민단. 어릴 때부터 전사로 키워짐.

2. 페리오이코이(perioikoi) : 주변인(주로 외국인), 똑같은 스파르타 사람들이면서 남하한 도리아 인들 중에 아직 시민이 아닌 사람들. [혹은 원주민 중에서도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종속적인 지위를 감수한 자는 신분은 자유로우나 시민권이 없는 상태로서 페리오이코이가 됨.(서양사개론)] 페리오이코이는 참정권은 아니지만 노예는 아닌데다가, 스파르타 시민들에게 금지된 상공업이나 수공업에 종사. 도시나 그 주변 촌락에 거주하면서 전쟁이 나면 시민과 함께 종군하여 싸우거나 전쟁 군비를 제공하는 역할.

3. 헤일로타이(Heilotai; Helots) : 스파르타인들이 라코니아와 메세니아로 확장 및 정복하면서 얻은 피정복민들. 예속민이었으나 끝끝내 완강하게 저항한 자들. 스파르타에서 가장 많은 이들은 정복 노예인 헤일로타이. 스파르티아테스들에게 나누어준 땅을 경작하기 위해 국가에서 분배해준 노예들이 바로 헤일로타이. 이들에게 가해지는 신분차별은 엄격했는데, 그들은 먼저 노예의 표식인 가죽옷을 착용. 그리고 자유인들이 부르는 노래나 춤도 금지.

  스파르타 시민들이 청년교육을 할 때에 헤일로타이들을 일종의 전투훈련의 대상으로 놓고 훈련을 하기도 했는데, 가장 힘센 헤일로타이는 훈련 중에 죽이기도 했음. 그리고 스파르타 식 아르콘 격인 에포로이가 취임할 시에 헤일로타이에게 전쟁을 선포시켜 청년들에게 노예를 잔인하게 죽이도록 하는 훈련을 시키곤 했음. 노예반란이 일으켰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공포심을 사회에 심어주는 조치.(김덕수 교수님)

  특히 기원전 8세기 말(725~705 B.C.경), 7세기 후반(640~620 B.C경)에 걸친 메세니아 전쟁에서 헤일로타이를 많이 얻게 됨. 2차 메세니아 전쟁은 메세니아인들의 반란이었는데, 스파르타인들은 이들을 헤일로타이로 만든 뒤 그 토지를 소수의 스파르티아테스들에게 나누어주었기에 딱히 아테네와 같은 토지분배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음. 일단 시민들은 먹고살만 했으니.

 

 


2.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 체제"

 

 

 

  스파르타의 체제는 특이한데,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라고 하는 전설적인 인물의 법으로 인한 - 리쿠르고스 체제라고 부름.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는 전설속의 인물인데, 대개 기원전 675년 경에 이미 스파르타의 법 체제의 틀을 놓은 사람으로 지목됨. 그래서 대 레트라(Great Rhetra)’라고 부르기도 함. 그런데 민석홍 선생은 메세니아 전쟁에 이르는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었다고 함. 또한 그 내용을 보면 "두 사람의 왕이 있으나 실권은 없고, 두 왕을 포함하여 30명의 유력한 가문출신으로 구성되는 장로회(Council of Elders)가 국정의 중요안건을 마련하지만, 이는 20세 이상의 성년남자 시민주체로 구성되는 민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정운영의 실권은 민회가 선출하는 임기 1년의 5명의 에포르(Ephor; 에포로이)에게 있었다. 이 에포르는 국정운영 면에서 본다면 집정관이라고 하겠으나, 원래의 임무는 왕을 포함한 여러 관직자의 행동을 감시하고, 스파르타 특유의 생활양식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감사관(監査官)의 기능도 겸유하고 있었다."(서양사개론, p.69)

  리쿠르고스 체제를 보면 시민을 필레오베로 편성을 했다는 것. 그리고 5개의 공동체(4개 농촌, 1개 읍)의 각 공동체의 대표를 1명씩 뽑아서 5인의 에포로이가 나라를 다스리기로 했음. 아테네는 9명의 아르콘을 뽑아 1년 임기로 하기로 했는데, 스파르타는 5명의 에포로이들이 아테네의 아르콘과 같은 활동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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