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발전] 2월 혁명

취미와 문화 2021. 8.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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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7월 왕정은 은행가, 대상공업자, 일부 부농들을 위한 정권으로서, 선거권이 차등분배되어 있었다. 게다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고되게 되고 노동자는 단결하게 된다. 결사를 조직하고 사회주의가 확산되었다. 그에 반해 7월 왕정은 1834년에 노동자에 대한 반 단체법을 제정하게 된다. 7월 왕정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갔으며, 그 불만은 선거권 확대 요구로 수렴되었다.

 

프랑스 초기 사회주의자 중에 루이 블랑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7월 왕정을 비판하여 부르주아적 정치에 반대한 사람으로서, 산업사회의 경쟁 및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비난했다. 보통선거를 통한 노동자 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을 주장했으며, <노동의 조직>이라는 저서에서 국립공장 건설을 주장했다.

 

그 결과 7월 왕정 특유의 국립 작업장이 설치되었다. 그 설치 목적은 노동권 보장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급진적인 개혁으로 인해 부르주아가 동요하게 되고, 제헌의회 선거에서는 대다수가 온건파 의원에 선출되었다. 

 

노동자 및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부르주아 중심의 의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의회 해산과 새 임정 수립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이 들끓을수록 부르주아 계급의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파리에 6월 노동자 폭동이 일어나고 카베냑 장군이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파리에 계엄령이 선포되는 한편, 공화제 헌법이 제정되었다.

 

공화제 헌법은 이름으로 봐서는 공평해보이나, 일단은 부르주아 중심이었다. 노동권 관련 조항이 제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화제 헌법인 만큼 보통선거, 단원제 의회 및 임기 4년의 대통령 중심제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아이러니하게 1848년 12월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제 2공화정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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