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발전] 빈 체제의 운영

취미와 문화 2021. 8. 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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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는 근대의식의 성장과 시민혁명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고 본다. 자유주의란 사회보다 개인을 중시하고, 평등이나 보편주의에 바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1. 빈 회의(1814~1815) : 시대에 역행하는 체제인가, 유럽안정을 가져온 체제인가?

빈 회의의 배경은 자유주의가 확산되었을 때 무너져내릴 수 있는 왕국들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을 꼽을 수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오스트리아이고, 오스트리아의 재상이 메테르니히였다. 메테르니히가 주도하는 이 빈 회의는 근대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 내용을 보면 '신성한 정통성의 원리'를 내세워 혁명 전의 상태로 복귀하고자 하는 것이 요점이다. 혁명이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전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정통적인 것이란 혁명 전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프랑스, 에스파냐, 나폴리 등은 부르봉 왕실의 복귀를 추구하며, 포르투갈 역시 구 왕실을 복구하고자 하였다. 일단 이들은 세력균형과 유럽의 안정을 위해서 일단 영토문제를 해결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이렇게 요약이 된다.

1) 러시아 : 러시아 서쪽에 위치한 폴란드 왕국 건립. 러시아 황제가 폴란드 왕국의 왕위를 겸한다.

2) 프로이센 : 작센 지방 북부와 라인 지방을 획득한다.

3) 독일 : 독일 연방이 성립한다.(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중심)

4) 네덜란드 : 오스트리아령 벨기에를 얻는데, 그것까지 합쳐 네덜란드 왕국이 된다.

5) 오스트리아 : 벨기에를 포기하고, 롬바르디아, 베네치아를 얻는다. 이탈리아는 이로 인해 분열한다.

6) 영국 : 몰타 섬, 케이프 식민지, 세일론을 얻는다.

 

2. 빈 체제 아래 국제기구들

1) 신성동맹(1815.9) :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나폴레옹을 타도한 일등공신이다. 그는 크리스챤으로서 오스트리아에게 신성동맹을 맺자고 제안을 하는데, 기독교 정신, 즉 정의, 자애, 평화에 입각한 평화유지를 주장한 것에 특징이 있다. 적을 두지 않는 평화유지라는 점에서 현대의 관점에서는 특이하나, 사실 당시에는 일등공신인 러시아를 무시할 수 없었던 사정이 보인다. 러시아 황제의 신비주의의 소산이었고, 영국, 교황청, 오스만제국은 러시아가 그리스 정교를 따랐기에 이 동맹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2) 4국 동맹(1815.11) :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의 강대국들이 결성한 동맹으로서, 대외적으로는 혁명 세력 성장을 저지시키고자 하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내부에서는 전제주의를 재확립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빈 회의의 결과 무력 사용이 허가되었으며, 실질적인 국제기구 구실을 해 나가게 된다.

 

3. 메테르니히의 빈 체제 운영

오스트리아는 마자르, 슬라브, 게르만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는 빈 체제를 주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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