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식민지 근대화론의 맥락 정리

취미와 문화 2023. 6. 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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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 '-화', '이론'
쪼개면 쪼갤수록 여러 갈래로 얽혀있는, 거대한 논쟁이다.
 
다만 대중적으로는 식민지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근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대-화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이론'인지 '객관'인지 혼돈 속이다.
 
크게 보아, 대중으로서 생각해볼 만한 주제는 이러하다.
 
1. 식민지 시절 한반도가 근대화되었다면, 그 주체는 누구인가?
: 사실은 '그 당시 지배층이 곧 일본이니, 일본이 당연히 주체이다'라는 것은 곱씹어보면 꽤나 급진적인 주장이다. 그 당시의 조선사람들이 외양간의 소처럼 받아먹기만 하고, 똑똑한 '문명인'에 본질적으로 한참 못미치는 '미개인'이라면, 성립할 수 있는 주장이다.
 
2. 근대는 '좋은 것'인가?
: 오늘날 우리는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자본주의란 근대 이념으 상징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과거, 전통은 질적으로 열등하게 보인다. "전통 = 열등, 근대 = 우월" 아마 조선사람들도 알음알음 근대는 우월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말 ~ 일제강점기 내에 조선사람들이 체험한 당시의 실제 사회가 '근대의 우월함'을 반영하고 있었을까? 현재의 우리는 "근대=우월" 도식에 사로잡힌 채 그 당시의 사람들의 실생활을 복원할 수 있을까?
 
3. 근대화론은 객관적인 사실인가, 이론인가?
역사적으로는 이것을 '일개 이론'이라고 결론을 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너무나 대중화된 나머지, 과거의 민족주의에 빠진 '좌파' 역사가들을 혼내주는 '팩트', '객관주의자'라는 착각이 범람하고 있다. 인문학에서 팩트를 다루는 법에 서툴다면, '객관'이라는 말을 남발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학문이나, 이 정도로 만방에 적용할 수 있는 것 같이 팽창한 이론은, 어디에나 헛점이 있는 법이다. 다만 정치적으로 강력한 탓에, 물리적으로 반박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 뿐이다. 사실 역사학계에서 이 떡밥이 식은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꽤 낡은 이론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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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기는 조선에게 마냥 마이너스였던가."
 
식민지 근대화론자의 질문은 식민지 수탈론,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일제가 한국의 성장을 막기 위해 오로지 수탈만을 자행했다면, 박정희 정권 때 이미 이용할 만한 기반시설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약탈했다'라는 이론에 거울처럼 등장한 것으로, 역시 '일제의 지배는 식민지 조선의 (잠재적) 발전동력을 심어주었다'라는 결론을 고수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친일사관'이라는 자기 인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경제학적인 낙관론, 즉 한국의 경제발전 신화라는 국뽕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경제 지표(로 보이는 것)의 성장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그에 유리한 자료들을 위주로 모아 '내재적 발전론'을 집중공격한다.
 
이로부터 이들의 '애국적'인 결론은 이렇게 귀결된다.
 
"일제 시대에는 굴욕적이게도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근대적인 문물을 일본이 들고 왔으니, 현대 대한민국에 들어와 그 문물들을 이용한 박정희라는 위인을 만나 크게 성장했다. 그러므로 자꾸만 퇴행적으로 보이는 전통과 민족주의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의 성장에 집중하여 일본에 밀리지 않는 국력을 키우자."
 
이런 주장으로써, 이들은 스스로 '실리적'이며, 역사적으로는 '객관적'이라고 평가한다.
 
이 논쟁을 본 대중들은, '민족주의 일색인 주류 사학계'가 완전히 실리주의자, 객관적인 학자들에 무참히 패배했다는 착각을 겪게 된다.
 
사실 식민지 수탈론 및 내재적 발전론과의 논쟁은 아직까지도 종결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주류 사학계가 식민지 수탈론자들로 가득하단 것은 비전공자들의 지레짐작에 불과하다. 식민지 근대화론 논쟁 자체가 이미 식어버린지도 오래됐고, 일제강점기 전부를 포괄하기엔 너무 학문적 범주 자체도 한정적인 이론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별로 핫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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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식민지 근대화론은 '우파'의 '자유진영'의 행동원리로 자리잡은 것 같다.(필자는 여기에서 크게 비판할 생각도 없고, 찬양할 생각도 없다.)
 
'자유시장경제'로써, 일본에 대한 굴욕적인 과거를 청산하고, 그들과의 시장 경쟁을 승리하여 국가를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이념이 '우파'의 주류가 되었다.
 
이 근대화론 이념이 식민지 시절 그 당시와 크게 구분되는 점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고수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극우'에 속하시는 김구 선생이 민족을 끝까지 고수하셨던 게 떠오른다.
현재 우파가 이념 상 현재 반공과 자유시장경제, 성장, '발전' 등 경제적인 면에 치중하게 된 것은, 남북 분단의 지형에서 좌파들에게 "민족" 이념을 빼앗긴 탓이 크다.
민족은 사실 굳이 따지자면 전통적으로 우파적인 개념이었지만, 그것이 타 진영에 빼앗겨버리자, 우파가 설 수 있는 기반이 너무 협소해진 것이다.
 
그래서 근대화론자들은 어쩌면 근대적 민족이념이 자리하기 이전, 막 근대에 대한 기대감이 꽃필 무렵, 즉 식민지 직전의 '급진개화파' 계열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들 급진개화파에겐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화'라는 이념이 우선순위로 잡혀있기에, 경제 제도에서 국가적 의존을 경계하는 바가 없었다.
 
그저 뛰어난 서구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구세대적이고 문명적으로 뒤떨어진 것 같은 '봉건적'인 것을 혐오하여 성장하고자 한다.
 
이들 역시 선한 당위가 있었고, 이를 통해 조선을 살리고 싶었을테다.
하지만 이들은 근대 사회에서의 역사적 경험이 부족했고, "근대 국가가 우리를 속방으로 만들 일은 없다"며 안심하였다.
이들은 '근대'라는 것을 마냥 '선한 것'으로 보았고, 그 선한 관계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는 끝끝내 실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일본은 호구가 아니었으니, 손해를 봐 가면서 조선을 부국강병시켜줄 필요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좌파의 입장을 빌려보자.
 
일본에겐 "서양열강의 식민지 개척 정책을 모델 삼아, 조선 전체를 노동자화, 착취대상화하고, 자신들은 자본가가 되리라"라는 전망이 있었을테다.
 
"이것은 일본을 너무 나쁘게 본 것 아닌가? 너 빨갱이인가?"
 
우리 역시 근대라는 이념을 체화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과의 통일을 상상할 때 그 면모가 드러난다.
 
"남한은 자본을 투자하면 되고, 북한 사람들은 노동자로 고용하면 되지! 게다가 북한 땅엔 자원이 얼마나 많냐?"
 
근대에는 착취라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특히 근대라는 것이 제동장치 없이 가속화되기만 한다면, 외면하고 싶어도 '착취'와 '폭력'이 어떤 형태로든 발생하고 만다.
필자가 좌파라서 착취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 역시 많은 보완을 거쳐오기 전까지는 매우 투박한 이념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인이 역사적으로 일본에게 당해서, 감정적 이유만으로 일본을 싫어하는 '반일 종족주의'라며 불평불만하곤 한다. 하지만 '일본'에게서 느끼는 환상의 꺼풀을 벗겨보면, 일본 역시 자기 먹고 살기 바쁘고, 어느 나라나 그렇듯 이기적이며, (우리의 '상고사' 애호가님들이 고구려를 떠올리며 가슴벅차하듯) 과거의 영광을 찾아 팽창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일본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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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식민지 시대에 경제지표가 오른 것은 '팩트' 아니냐? 반박도 못하면서..."
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역사가들 중에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경제학자들보다 경제학에 빠삭하리오?
경제 이론 면에서는 어쩌면 '뉴라이트'의 경제학자들이 더 철저할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것은 '경제 지표로 식민지 사회를 파악하려는 시도' 중 하나로서, '경제'가 아니라 '역사'의 영역을 논하는 이론이다.
 
사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많은 입장들은, 신빙성있는 경제학적 이론을 들고 접근한다기보단, 각종 통계 지표를 들고 와 '우상향'을 그리는지 아닌지가 중점이 된다.
 
노비 수가 증가했는지, 인구가 증가했는지, 소득 수준이 증가했는지, 어떤 시설이 지어졌는지 등.
경제학의 싸움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아마도 경제학이라는 것이 과거를 이용하는 방식은, 새로운 경제학적 이론을 수립하는 데에 있지, 기존의 경제학적 이론(학자 자신의 철학 도구)을 역사가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가가 관건이 아니기 때문에 고차원적이지 않고 정치이념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필자 같은 애송이가 감히 지적하건대, 근대 이후 역사가의 기본 소양은 '잠시 평가를 보류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어떤 특정한 사실을 다루지만, 그 사실에 여러가지 '진실'들이 내포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다.
설령 어떤 학문의 이론에 부합한다 한들, 이 사회 전체가 그 학문의 메커니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구상에 여러 분야의 학설이 있으면 항상 간학문적으로 접근하여, 그 절충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
 
설령 '식민지 시기에 조선의 경제 지표가 올랐다'라는 해석이 공인받는다 하더라도, 막상 조선사람들이 생산한 사료에 그들의 고통이 담겨있다면 해석 상 적절한 중심을 찾아야 한다.
'근대화'가 이루어졌기에 모든 사람이 마냥 '천국에 갔다'는 결론이 내려진 뒤에, 고문 받은 조선사람들의 사례, 제도적 불합리가 구조화된다거나 하는 것을 '정치적 편견'으로 치부하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현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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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기념식 행사 직전에 윤 대통령이 선언문의 문구에서 일본의 '제국주의'를 '군국주의'로 교체했다는 뉴스가 떠올랐던 적이 있다.
 
제국주의는 어쨌건 근대의 착취적 측면을 강조하며, '거대 기업의 팽창과 그로 인한 타국의 정치·경제적 식민지화'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것을 '군대식 문화의 범람',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도 찾을 수 있는 '군국주의'로 교체한 것은 윤 대통령의 "자유시장경제"의 강조와 일맥상통한다.
 
윤 대통령이 시도하고 있는 돌파구는,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측면의 성공'에 대하여 국민적 기대를 얻는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 역사 이론 면에서는 다소 투박한 논리를 사용한 것에 대하여 각 대학의 역사과 교수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것은 필연이었다.
"감수하겠다"는 것은 윤 대통령의 임기 초부터 꾸준한 태도였는데, 어쩌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보수진영의 향수에서 교훈을 얻은 것 아닐까?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는 했어도, 경제 하나는 끝내줬지~."
경제라는 당위로 수많은 당위를 덮어놓고, 정면 돌파하려는 생각인 것이다.
그 수단이 적절한 목적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지는 먼 훗날에 재고찰하면 되겠다.
(필자는 '비겁한' 회색분자, 중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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