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세사 정리노트] 위진남북조의 사회 - 부농의 호족화, 호족, 외척과 환관의 결탁, 청의파 하북성 무안현 오급진 북쪽에는‘오급고성(午汲古城)’이라는 곳을 보면 10리제 형태로 구성이 되어 있음. 당시 후한 시기부터 유교적 향촌질서인 군현-향삼로-부로-향-리 체제가 형성되어 있었음. 유교를 밀어주며 전한대 50명 정원의 태학을 설치한 한무제 이래, 태학 학생의 수는 늘어났고, 후한대에는 1000명 정원으로 늘어났음. 한 수도 낙양 뿐만이 아니라 지방까지 지식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고, 후한 말기에 정현(鄭玄) 같은 대학자는 사실 차지농 출신이었으니, 지식인 계층이 그리 상층부에 한정되어 있던 것 같지는 않음. 후한 중엽 이후가 되자, 학문을 이루고 돌아온 자는 각각 고향에서 문도를 가르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