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근대사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갑자사화(1504)

취미와 문화 2021. 4. 2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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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갑자사화(1504)


  연산군의 어머니이자 성종의 비는 사약을 마시고 죽었음. 성종의 첫 번째 부인은 한명회의 딸 한씨 부인, 두 번째 비가 바로 윤씨 부인(연산군 어머니). 굿하는 방법이 적힌 서적을 숨겨놓았다거나, 투기가 심했다거나 등의 이유로 폐비되고 사약을 하사받은 것임.

士洪承召(임사홍은 임금의 부름을 받아(承召; 승소)), 必微服(반드시 자질구레한 옷을 입고 와서), 當昏由便門以入(마땅히 어두워지면 드나들기 편한 뒷문으로 드나들었다.). 王於是(왕은 이에/이 때부터), 大肆刑戮(크게 방자하게 형벌을 내려 살육을 했다), 追究言事之人(언관직 사람들을 추구(追究, 근본을 캐어 들어 연구)하였고), 自大臣⋅臺諫⋅侍從(대신에서부터 대간, 시종에 이르기까지) , 誅竄殆盡(거의 다 베어버리거나 내쳐버렸(귀양보냈)고), 朝廷一空(조정은 온통 비었다.). 怨廢妃事(폐비의 일을 원망하며), 杖殺成宗後宮(성종의 후궁들을 장형으로 죽여버리고), 竄戮子女(그 자녀들은 내치거나(귀양보내거나) 죽였으며), 其子妻令嫁人妾(그 며느리는 남의 첩으로 보내도록 하고), 給諸君駙馬畜之(여러 군들과 부마에게 주었다.). - 연산군일기 권63, 12년 9월 2일(기묘)
* 自 : 자기 자신, 자연히, 저절로, 별도로, ~부터
* 一 : 하나, 첫째, 온, 같다

 

  1) 임사홍의 충동질? : 갑자사화는 무오년 사화와는 완전히 다름. 바로 폐비 윤씨와 관련하여 많은 선비들이 죽었다는 것이 기존의 설.. 연산군은 자신의 권력 행사에 대해서 자기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설명이 됨.

  그런데 연산군 10년에 연산군의 정치를 원로든 젊은사람이든 간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왕의 행동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음. 그런데 이 때에 연산군이 갑자기 어머니의 문제를 꺼내들었음.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는 성종의 왕비였는데 쫓겨나는 폐비를 당하게 됩니다. 보통 궁중에서 내쫓고 어떤 거처를 정해줘 살게 해주는 것이 보통인데, 연산군의 어머니는 폐비가 되어 쫓겨나자 사약을 받아 죽었음. 왕에게 왕비의 의미는 왕자를 생산하는 것. 고로 왕 주변에는 여러 여성들이 많았음. 그런데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성종의 얼굴을 할퀴었다는 야사가 있었다고 함. 어쨌건 질투가 많다고 해서 그런 것인지 폐비되고 사형된 것. 그런데 그 아들인 연산군이 갑자기 그 문제를 들고 나왔음.

  그런데 신하 입장에서는 이미 옛 왕의 일이고, 왕실의 일. 많은 신하들이 그 문제는 선왕 때의 일이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대간에서 상소를 올렸으나, 연산군은 그들을 죽였음. 결국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 사건에 연루된 아주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죽였음. 대표적으로 김일손, 정여창, 김굉필 등이 숙청당했음. 앞선 무오사화에서는 굉장히 이념적인 문제였으나, 이번 갑자사화는 어머니의 복수라는 것. 성종의 두 비빈을 죽이고, 자기 아버지 성종의 어머니인 자신의 할머니를 유폐시켜버림. 그리고 대간을 완전히 막아버림(서강대학교 정두희 교수님).

 

* 갑자사화의 결과

1. 경연 금지 

2. 홍문관 폐지 : 경연을 주관하는 홍문관을 폐지하도록 하고, 말을 삼가도록 하는 신언패를 차게 하였음.

3. 한글 금지 : 한글 벽서 같은 것이 붙었기에, 한글도 금지.

 

  2) 연산군 친위체제 구성? : 연산군은 이미 연산군 1년에 이미 폐비 윤씨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짐. 을사사화를 통해 경연 중지, 홍문관 혁파를 통해 기존 언관 기능을 마비시켰고, 자신만의 세력을 새로이 구축해 나갔음. 그러나 이 일련의 살육은 어쨌건 군주와 신하 간의 관계를 최악으로 치닫게 했고, 중종 반정이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됨.

 

* 출처 : 뿌샘 - 조선전기편, 2018 ebsi 김정현 한국사, 서강대학교 정두희 교수님 강의,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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