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근대사

[한국사 사료정리] 4. 고조선의 멸망

취미와 문화 2021. 5. 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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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사료정리] 4. 고조선의 멸망

 

위만조선은 중개무역에 종사하면서 부여, 진국 등 동북방의 여러 나라가 한나라와 통하는 길목을 막아놓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09년에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쳐 이 지역 전체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 眞番旁衆國, 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 사기 권 115 조선열전

대충 위만(衛滿)이 아들에게 왕위를 전해주고, 손자 우거(右渠)에게 이르러 한나라 망명인들이 많아졌는데, 천자를 뵙지도 않고 진국(衆=辰로 결론 나는 듯?)이 글을 올려 천자를 보고자 해도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게 했다는 내용. 위만조선이 중개무역에 종사하면서 그 길목을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보임.

 

其秋, 遣樓船將軍楊僕, 從齊浮渤海, 兵五萬人, 左將軍荀彘出遼東, 討右渠. - 사기 권 115 조선열전

그 가을, (무제는)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해 제()로부터 발해(渤海)를 건너게 하였는데, 병력이 5만이었다.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는 요동으로부터 나와서 우거왕을 토벌하였다. 

 

서의식 교수에 따르면, 누선장군 양복과 좌장군 순체는 무제의 총애를 받는 이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무제가 조선 공략에 공을 들였다는 것이고, 위만조선은 그 만큼 막강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런 위만조선도 결국 기원전 108년에 무너지게 되고 만다. 그리고 한무제 원봉(元封, 기원전 108년) 3년에 고조선이 멸망하고 낙양, 임둔, 현도, 진번의 4군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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