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프랑스 혁명] 앙시엥 레짐과 재정위기

취미와 문화 2021. 8. 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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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앙시엥 레짐 

 

프랑스 혁명의 배경으로서 앙시엥 레짐, 즉 구제도의 모순을 알아보자.

 

당시 제 1신분 성직자는 면세특권, 전 국토의 1/10 소유, 모든 농산물에 1/10세 징수, 영주로서 봉건지대를 얻으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물론 성직자 중에서도 고위성직자 - 주교, 수도원장 등 - 는 귀족에 속했고, 사제 수도사 등 하위성직자들은 평민에 속했다.

 

제 2신분은 귀족으로서 직접세인 타이유 면제와 도로부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귀족 중에서도 전통적 혈통귀족인 대검귀족이 있었고, 부르주아 출신의 법복귀족이 있었다. 

 

제 3신분은 부르주아, 농민, 임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르주아는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귀족아래에서 구제도의 모순 타파를 부르짖던 이들이었다. 부르주아는 상층 부르주아로서 은행가, 징세 청부업자 등이 있었고, 쁘띠 부르주아(소시민층)으로서 수공업자, 소상점주가 있었다.  한편 농민은 대다수가 토지 소유자였지만 생활이 어려웠는데,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특유의 분할상속, 십일조 등의 생활수준을 저해하는 여러 장치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임노동자들은 요즘같은 독자적 단결력이나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계몽 사상이 시민사회에 활발하게 전파되었다. 구제도 의식을 타파하고자 하는 열망은 높아져 갔으며, 미국의 독립혁명의 성공소식은 프랑스 혁명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2. 재정위기

루이 14세 때 잦은 전쟁으로 재정이 궁핍하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전승전쟁, 네덜란드 전쟁, 아우크스부르크 전쟁, 에스파냐 왕위 전쟁 등 커다란 전쟁을 여러 번 겪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루이 15세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7년 전쟁을, 루이 16세는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재정을 악화시켰다.

 

재무장관들은 무너져가는 프랑스 왕실을 붙잡고 있지 못했다. 튀르고는 중농주의자로서 귀족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려 했으며, 궁정경비를 삭감했다. 당연히 귀족과 왕비의 반대로 실패를 맞았다. 네케르는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하는 데에 돈을 쏟아부어 국가재정에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재무장관이 된 칼론느는 세금을 더욱 높이는 수 밖에 없었다. 보조지세를 부과하는데, 모든 토지 소유자는 신분차별, 면세특권과 무관하게 현물을 납부하게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귀족들의 반발을 맞이할 뿐만 아니라, 여타 지주들의 좋지 않은 반응을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칼론느는 보조지세를 추진하기 위해 왕실과 가까운 귀족대표들로 구성된 명사회를 소집하여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려 했으나, 프랑스 고등법원이 매우 극렬히 저항했다. 

 

이 즈음에 1786년 이든조약, 영불통상협정이 체결되었다. 저율 관세와 자유무역 원칙을 골자로 하여 영국과 체결하였던 것인데, 관세가 인하되어 산업구조 면에서 영국에게 불리했던 프랑스는 밀려드는 영국제품을 구매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 외교의 패배였다.

 


3. 삼부회

고등법원은 삼부회 소집을 요구했다. 보조지세 부과를 위해 명사회를 소집한다는 칼론느의 생각은 프랑스의 삼부회 전통과는 맞지 않았다. 새로운 세금의 부과는 오직 삼부회의 권한이었기 때문이다. 고등법원의 귀족들은 이 참에 왕실 재정위기를 틈타 절대왕권을 제약하고, 귀족정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결국 루이 16세는 어쩔 수 없이 삼부회 소집을 선포하게 되었는데, 이 때가 1789년 5월이었다.

 

삼부회에서 각 신분 대표는 300명 가까운 숫자로 소집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신분별 투표를 하게 되어있으니, 비율로 따지자면 1신분 1표, 2신분 1표, 3신분 1표 꼴이었다. 이건 프랑스 사회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제3신분에게 매우 불리한 투표 방식이었다. 제3신분은 대표 수 2배 증가와 머릿수 표결을 요구하였다. 금성 세계사 교과서에 따르면 제 1신분은 291명, 제 2신분 285명, 제 3신분은 578명으로 대표 수를 두 배로 증가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머릿수 표결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제 3신분 주도로 국민의회를 소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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