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변화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1832년 선거법 개정이다. 기존에는 소수의 지주층만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당시의 집권정부인 휘그 정권이 결국 1차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앞서 7월 혁명의 결과로서 언급을 했다.
1. 재산상 중간계급까지만 선거권을 확대한다.
2. 부패선거구를 개정한다.
[19세기 영국사 - 차티스트 운동]
1차 선거법 개정은 아직 인구의 2할도 안 되는 이들만이 선거권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1834년부터 인민헌장운동이 시작된다. 이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남자 보통 선거권’.
2. 당시 노동대중들은 세비를 지급받지 않아 정치에 진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의원에게는 세비를 지급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 연대 | 제1차 1832년 | 제2차 1867년 | 제3차 1884년 | 제4차 1918년 | 제5차 1928년 |
선거권의 확대대상 |
도시중산시민 | 도시노동자 | 농촌노동자 광산노동자 |
21세 이상 남자 30세 이상 여자 |
21세 이상 남녀 |
당시의 내각 | 그레이(휘그) | 디즈제일리(보수) | 그래드스허(자유) | 로이드 조지(자유) | 볼드윈(보수) |
“영국의 지도자들은 차티스트들의 요구를 한꺼번에 다 들어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선거권의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1867년 디즈레일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제2차 선거법개정을 통하여 도시의 대부분의 임금노동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1872년에 비밀투표가 정해졌고,] 글래드스톤의 자유당에 의해 1884년에 3차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법을 다시 개정하여 투표권을 농촌노동자에게 확대하고, 선거구에 대한 손질도 하였다.”(서양사개론)
* 20세기 초 자유당 내 로이드 조지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의 조치
1. 1909년 인민의 예산으로 알려진 증세를 제안했다. “소득세를 파운드 당 5펜스에서 6펜스로 인상, 연간 3000파운드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파운드 당 1실링 2펜스의 초과소득세를 신설, 상속세 인상, 담배 및 주류세 인상”
인민예산안도 돈이 필요해서 짰다는 건데, 이건 노동당의 영향을 받았기에 그렇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독일의 군사력 증강을 위한 것 - 특히 해군에 자극을 받아 - 군 예산을 늘리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대폭적인 증세에 보수당은 이를 혁명이라고 규정하며 반대했다고 한다.
2. 1911년 국민보험법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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