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 소설쓰기 : 창작물에서 매력적인 악역

취미와 문화 2022. 6. 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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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악역은 스토리를 이끄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막상 플롯을 짤 때 글쓴이도 고민스러우므로 천천히 정리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글쓴이가 창작물을 내기 위해 정리하는 '뇌피셜'이므로 걸러보기를 바랍니다.


** 스포일러 주의 : <<향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라스트 오브 어스 2>>, <<헌터X헌터>> , <<다크나이트>> 등 다수 작품들의 스토리를 언급합니다.

1. 설득력 있는 과거와 현재
악역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즉 사랑, 자아, 주변사람들의 행복 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1) 사랑을 추구하는 악역 : 최소한 한번은 사랑에 배신을 당하고 인생이 흔들릴 만큼 큰 상처를 받아야 한다. 트라우마를 떨쳐내기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갈취하려 한다. 한편 운이 좋은 우리의 주인공은 그 사랑을 (악역에 비해) 손쉽게 얻어 향유하고 있다.

- 악역 : "나도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어. 사랑받고 싶고. 사랑을 주고 싶어."
- 주인공 : "하지만 그 방식은 잘못됐어."
- 악역 : "방식이 잘못됐단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나도 어떻게든 (너처럼) 그런 사랑을 얻고싶은 걸?"


악역은 '진정한 사랑'을 항상 원한다. 가족을 원하든, 친구를 원하든, 연인을 원하든 간에 그는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을 추구한다. (진짜 로맨틱하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강압하는 것이 아니라, 연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구애를 한다면 악역이 아니다.)
한편 악역은 과거에 겪은 사랑의 의미를 부정한다. 과거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 옛날에 잃어버린 사람 등과는 진정한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 과거에 있었던 사랑(들)이 악역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사랑이었다. 또한 악역이 현재 추구하는 '진정한 사랑'은 오히려 허상일 뿐이다. 가령, '향수'의 주인공은 (어린 자신이 의지했던) 보호자들에게 연달아 버려지고 구박당한 나머지, '인간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거세당한다. 그렇기에 '진정한 사랑'을 모방하기 위해 향수를 만들지만, 끝끝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의 향수일 뿐이었다.

2)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여 자존감을 찾는 악역 : 이 플롯에서는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간에, 최소한 한번은 존엄성을 짓밟힌 적이 있다. 그런 악역의 사연은 충격적인 편이다. (그런 경험이 작중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사이코패스 악역이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그것도 잘 만들면 '조커'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겠지만, 다른 특별한 매력이나 설득력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단순한 성범죄자, 살인자, 사기꾼, 사이비 매드 사이언티스트 등으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주인공과 악역 모두, '(권위있는 누군가/책이) 인간은 선하다고 하는데, 자신만이 악한 인간에 의해 불가피한 비극을 맞았다'라는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즉,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지금 세상은 썩었다'는 것은 동의한다. 그러나 주인공과 악역은 그런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 악역 : "이 세상이 썩었기에, 나는 당연히 불가피한 비극을 맞았어."
(악역으로서는 내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이다.)
- 주인공 : "그래 나도 이 세상이 마냥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 역시 비슷한 비극을 겪었으니까."
(주인공은 이미 내적으로 비극을 극복한 상태이다.)
- 악역 : "그렇지? 너도 사실 나를 이해할 수 있잖아. 이 세상은 썩었어. 최소한 비극을 만든 이들, 혹은 그런 사회구조를 만든/그런 사회구조에 부역하고 있는 인류 전체에게도 이 세상의 추악한 진실을 알려줘야 해."
(악역이 고른 복수의 대상은 상식보다 넓다. 악역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사람보다, 더 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복수심 내지 선민의식을 내보이길 원한다. 최소한 작가는 민간인을 선량하게 묘사해야 한다.)
- 주인공 : "하지만 너는 지금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잖아. 인간은 지켜져야 해!"
- 악역 : "너는 참 가식적이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옛날에 받은 충격이 너무나 큰 나머지, 악역은 극단적인 인간관을 갖게 된다. '인간은 모두 (타락한 나 /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과) 똑같다.'
이 끔찍한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주인공과 악역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주인공은 (주로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인간성을 짓밟은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악역 자신은 무력하며, 자신이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악역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합리화해야 한다. 사람들의 악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악역 자신 역시, 악의를 가진 사람이다. 사람들은 가식적이게도 선량한 척 하지만, 가면 뒤에는 악의를 품고 있다. "자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좀 솔직해지자고? 그리고 주인공 너도 말이야!"
더 나아가, 이 악역의 유형에 따라 플롯은 다양해진다.

(악역이 주인공에게 두들겨 맞고, 설득당하고,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패배를 맞은 후 결말 ...)

(1) 악역의 속죄 : "정말로 사람들이 이렇게 착한 면이 있을 줄 몰랐어... 하지만 나는 너무 많은 죄를 지었는걸? 이제 죽음으로 속죄할 거야."
- 악역이 죽을 경우 : 주인공의 영웅성을 드높이기 위해, 악역의 죽음에도 동정을 표한다. / 작품의 메세지를 강조하기 위해, 주인공은 죽은 악역에게 '비겁하다'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 악역이 살 경우 : 악역은 무조건 선역으로 돌아서야 한다. 대개 주인공의 따까리로 계속 등장하거나, 어딘가 한적한 시골마을에 틀어박혀 선생일을 하는 등 조용히 퇴장한다.

(2) 악역이 속죄하지 않음 : "후후... 지금 싸움은 내가 졌지만, 언젠간 주인공 네놈도 내가 옳았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나는 우리 8대장 중에 최약체다. 후후후.)"
- 악역이 죽을 경우 : 현재 악역보다 더 악랄한 다음 악역을 준비해야 한다.
- 악역이 살 경우 : 역시나 더 악랄한 다음 악역을 준비해야 한다. 다만 이미 소비된 캐릭터이므로 매력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타나도 감흥없다.


3) 주변사람들의 행복을 논하는 악역 : 악역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우정있는 악역, 우정없는 악역.
- 우정있는 악역 : 게임/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쳐에서 볼 수 있는 두 가지 예시가 있다.
(1)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차세대 소년만화로 유명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히어로', 악역은 '빌런'. 주인공이 엄청난 잠재력을 부여받고, 잠재력을 키우면서 성장하는 플롯이다. 이 작품은 악역의 사연을 설명하는 데에 큰 비중을 둔다. 악역1은 엘리트 히어로 집안에서 낙오되어 복수심에 빌런이 된 능력자, 악역 2는 너무 강력한 능력을 가진 나머지 사회에 버려진 대신 악의 무리에게 길러진 능력자 등이다.
이 작품에서 메인 빌런은 모두 주류 사회의 낙오자로서, 그들만이 서로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들의 주요 공격 대상은 주인공의 '동료애'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진정으로 '동료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있는 자들이다. 만약 그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왜 그렇게 동료에 집착하는 거냐? 동료는 소중하지 않아!'라며 설득을 하려 든다면, 이들은 역겨운 내로남불식 악역이 된다. (물론 진정한 흑막은 이들 메인 빌런과는 결을 달리하여, 뒷공작을 자주 펼치지만.)

(2) 라스트 오브 어스 2 : 게임 유저들의 혹평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1편의 서브주인공 '엘리', 2편의 주요 빌런 '애비'.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플롯이 진행된다. 시간 순으로 간추린 두 사람 중심의 플롯은 다음과 같다.

1. 애비의 아버지가, 엘리를 인류를 구하기 위한 '실험도구'로 쓰려고 한다. 실험을 위해서는 엘리의 머리를 열어야 한다. 애비는 인류 전체를 위해 (생판 남인) 엘리의 머리를 열어도 될 것이라 동의한다.
2. 엘리의 보호자 조엘은, 엘리를 살리기 위해 애비의 아버지를 죽인다.
3. 애비는 복수심에 불타 인간 살인병기가 된다. 애비는 공동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엘리의 보호자 조엘을 사로잡았다. 애비 일행은 조엘을 엘리의 눈앞에서 죽인다. 애비는 이제 내 복수는 끝이라고 선언하며, 엘리를 풀어준다.
4. 조엘을 잃은 엘리도 복수를 하고 싶었다. 엘리도 복수 과정에서 애비의 친구들을 죽인다.
5. ③ 애비는 (살려준 자비도 잊고 배은망덕하게 행동한) 엘리가 미치도록 밉다. 하지만 엘리와 그 애인만큼은 죽지 않을 만큼 때린 뒤 살려준다.
6. 엘리는 다시금 복수를 나섰지만, 애비가 위기에 빠진 걸 보고 구한다.
7. 탈출한 애비는 멀리 떠나려 했지만, 엘리는 애비를 향한 복수를 완수하고자 한다.
8. 엘리는 마지막 싸움에서 이겼지만, 애비를 죽이지 못한다. 복수는 허망한 것이므로.

이 게임 플롯에서 유저들이 비판한 부분은 굉장히 많지만, '동료애'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게임 유저들은 '애비'를 내로남불 캐릭터라고 평가하며, 인물의 심경에 공감하지 못한다. 사실 빌런이기에 공감할 수 없어도 되긴 하지만, 매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위의 플롯을 보면, '복수의 연쇄'는 애비 부녀가 먼저 시작했다. ①을 보면 복수의 연쇄가 시작되는 데에, 간접적으로 애비가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비의 친구들은 모든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리의 보호자인 조엘을 이미 철천지 원수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②엘리의 눈앞에서 조엘을 죽이고 그 위에 침까지 뱉는다. 그리고 복수는 끝났다고 선언해버린다. 그러나 ③애비는 복수의 연쇄를 끝내지 않는 엘리가 밉다. 원인제공자 측이 도리어 화를 내는 상황인 것이다.
이 플롯을 접한 사람들 중 다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왜냐하면 애비가 가진 도덕기준이 너무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몰라도, 창작물에서 인물의 신념은 일관되거나, 바뀐다는 징후를 보여야 한다.
일단 '애비'라는 캐릭터의 설정은 일관적으로 '가족애, 동료애가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애비는 기꺼이 아버지와 동료들의 복수를 행한다. 동시에 애비는 자신이 엘리의 주변인물에게 해를 가할 경우 복수를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엘리가 '감히' 자신에게 동료들의 복수를 하기에 괘씸해하는 작중의 모습이 등장한다. 현실적으로는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르지만, 캐릭터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다.
보통 창작물에서 '각오' 혹은 '신념'이 없는 빌런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가령 혼돈의 대변자이자 살인자 조커가, 배트맨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이렇게 사람을 때리는 건 불합리하지 않은가?" 따지며 눈물을 흘린다면, 다크나이트라는 영화는 졸작 중의 졸작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종합하자면 우정있는 악역의 경우, 주인공이 동료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만약 빌런들 사이의 우정을 강조한다 치면, 그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상처, 사연, 가치관 등을 강조하면 되겠다.

- 우정없는 악역
(1) 우정에 관심이 없는데 주인공에게 관심이 있음(헌터X헌터의 히소카) : <<헌터X헌터>>에서 주인공의 지향은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헌터'라는 직업인으로 생활하는 것, 모험하는 것 등이다. 그런 주인공에게 각종 위기가 닥쳐오고, 동료들과 함께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이 작품의 전체스토리이다.
히소카는 <<헌터X헌터>>에 나오는 변태 사이코패스 살인광이다. 그는 살인 대상을 점찍어놓고, 대상이 만족스럽게 강해지면 죽여버리는 취미가 있다. 그렇기에 그는 주인공이 (잡아먹기 좋게)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주며, 가끔은 (나중에 잡아먹기 위해서이지만) 주인공에게 성장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빌런인 히소카는 주인공이 추구하는 동료애라는 가치를 건드린 적이 없다. 애초에 우정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항상 히소카를 경계하고, 히소카는 주인공을 죽이려드는 빌런이지만, 독자들은 히소카에게 매력을 느낀다. (안티도 생기긴 했지만.) 그는 스타일리쉬하고 강력하다. 그리고 잘생겼다. 그런 장점 말고... 꼽아보자면, 그는 빌런이면서도 주인공의 조력자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의 협조로 주인공은 위기를 넘기며, 적당한 위기를 주어 주인공 일행을 단결시키기도 하고, 누구보다 주인공이 강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 훗날 어느 지점에서는 주인공 일행과 충돌하겠지만, 그는 그때까지 결코 주인공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일단 이 유형의 악역은 일단 주인공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거나, 인간적 혹은 이성적 매력을 느끼고 있거나, 주인공의 능력이 탐난다거나.

(2) 자연재해같이 너무 강한 녀석 : 이 악역은 힘/능력이 너무 강해서 의도치않게 남들이 피해를 보게 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성격은 다양하다. 자기중심적이고 거만한 악역의 명령에 당돌한 마을 여자가 저항하다가 붙잡혔다거나, 조용히 살고싶은 부랑자 성격에 누군가 귀찮게 했다거나, 힘을 통제하지 못해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식이다. 대개 주인공 일행보다 훨씬 강한 힘/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주인공이 지혜롭게 승리하게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이 악역은 너무나 강한데도 주인공과 그 일행의 잠재력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 악역 : "네놈 정도라면... 언젠가는 나를 뛰어넘을 수 있겠지."
- 쫄따구 : "지금이라도 싹을 밟아놓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하 생략.)

물론 요새는 이런 자연재해 같은 녀석이 빌런이 아니라, 먼치킨 주인공으로 소비되는 중이다. 일단 강하기에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리기 쉽고, 딱히 지혜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악역 주인공
- 악역 주인공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어야 한다. 나쁜 짓을 하지만,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 때문에 저지른다.
- 단순히 주인공이 악당의 가면을 썼다고 악역이 아니다. 악역 주인공은 선역 인물이 의도치않게 만든 피해자이다.
  1) 선역 인물이 주인공과의 경쟁에서 노력도 없이 얄밉게 앞선다. 악역 주인공은 자부심이 무참히 밟히거나, 2등을 한 탓에 부모님에게 구타를 당하는 등 충격적인 패널티가 있어야 한다.
  2) 선역 인물은 주인공에게도 친절해야 한다. 선역이 친절하게 행동하기에, 악역 주인공은 나쁜 짓을 망설인다.
  3) 사실 뛰어난, 1등, 세계 최강의 선역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악역 주인공 밖에 없다. 베지타 같은 인물이 ‘네놈(선역)을 쓰러뜨리는 건 나다! 그런 애송이에게 지지 마라!’라고 츤데레 응원을 하는 것이 그런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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