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소설쓰기 : 행복/불행을 대비하는 이야기 틀 중 하나

창작물에서 주인공의 감정선과 그에 따른 행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돌아갈 수 없는 과거 / 도달할 수 없는 미래의 행복
- 주인공은 과거/미래의 행복을 상징하는 어떤 중요한 사물을 지니고 있다.
- 주인공은 과거/미래의 행복을 상징하는 어떤 중요한 인물과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ex) 행복한 연애/결혼, 소중한 가족/친구와 함께있음, 신분 관계를 벗어난 일시적인 자유를 맛본 공주님,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를 만남.

* 현재 시점으로 넘어오는 데에는 강력한 단절이 필요하다. : 이렇게 큰 문제를 닥치게 한 주체에는 감정이입이 어렵다.
- 소중한 주변인물의 죽음과 그로인한 인간관계의 충격
- 어쩔 수 없이 행한 일로 인해 따돌림을 당함
- 물리적/화학적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
- 친구 혹은 가족이 납치당함.
- 기타 등등.

2. 행복을 이루기 위한 헛된 노력의 시작
- 상징물에 [잘못된 / 남들과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 과거/미래의 꿈에서 중요한 인물에게 주인공이 원하는 방식을 강압한다.

3. 주인공의 행복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점차 다가오는 비극
- 주인공은 위기의식이 있으나,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엉뚱한 방향으로 하게 됨.
- 중요한 사물을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거나, 잘못된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그 사물에 집착한다. 주변사람들이나 자기 스스로도, 자신이 사물에 부여한 의미가 이상하다는 걸 은연중에 느낀다. 그로 인해 삶이 괴로워진다.
- 중요한 인물이 주인공이 원하는 바와 달리 움직인다. 결국 주인공과 그 인물 사이에 싸움 혹은 이별이 일어난다.

4. 염증이 날 정도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비극.
- 주인공은 결국 타락하고, 중요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5. 비극의 절정

6. 우연한 기회로 행복을 되찾을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된 주인공.
- 비극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 비극 속에서 중요한 다른 사물을 얻게 된다.
- 비극 속에서 중요한 사람을 다시 얻는다. 그는 비극 속에서 성장한 주인공이 지켜줘야 할 인물이다.

(시공간적 제약으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조력자가 나타나 도와준다. 주인공이 그 조력자에게 우호적일지는 주인공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7.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새로운 행복을 찾게 된다.
- 새로운 행복이 무언가를 버리면서 생길 경우에는 비극이 된다.
- 새로운 행복이 무언가를 얻어서 생길 경우에는 성장물이 된다.

위 과정의 배열을 다양하게 할 수 있으며, 어떤 단계를 생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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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영화 <<패왕별희>>에 대한 강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안 본 분들에게는 권하지 않음.)
(생각나는대로 정리한 뇌피셜이니 걸러듣자.)


플롯의 실제를 살펴본다.

중국 영화 <<패왕별희>>를 단순화 시켜보자.

* 패왕별희 : 주인공들은 성인이 되면서 이름이 변한다. 단순화를 위해 어른 이름으로 설명한다.

[주인공 1인 '데이'의 관점에서]
1. 창녀인 어머니가 주인공 데이를 경극 극단에 떠맡기고 떠난다. 데이는 그곳에서 샬로를 만난다. 샬로는 창녀의 아들이기에 차별받는 데이를 보살펴준다. 곱상하게 생긴 데이는 항상 경극에서 여인 역할을 맡게 되고, 너무 혹독하게 몰입을 강요당한 나머지 남성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힘든 일상 속에서 데이는 샬로에게 의지하며, 그에게 애정까지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성인이 되자, 건장한 청년인 샬로는 창녀인 주샨을 애인으로 들이게 된다. 샬로가 주샨을 사랑하는 한, 데이는 결코 샬로와 옛날 같이 가까운 관계로 돌아갈 수 없으며, 미래에도 그와 함께 보낼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데이와 샬로가 연인일 수 있는 공간은 경극 무대 위 뿐이었다. 데이는 샬로가 영원히 경극 속에서 자신과 영원히 함께 연인으로 살길 바랐다.

- 데이의 과거와 미래는 샬로와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데이는 샬로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데이는 경극(과거, 사부님의 가르침) 속에서 샬로와 함께 살고 싶다. 그러나 샬로는 현실적인 연인 주샨을 따라 경극을 점점 벗어나게 된다.

2. 어린 시절 샬로는 자신의 경극 배역에 어울리는 멋진 보검을 탐한 적이 있다. 샬로와 사이가 소원해진 데이는 우연히 그 보검을 발견하고, 샬로에게 선물하여 경극 속 우희로서 패왕인 그를 받들고자 한다.

그 보검을 가지고 있는 이는 데이를 성적으로 탐하고 있는 문화계 대부이자 동성애자인 원대인이었다. 결국 데이는 몸을 팔아 보검을 얻는다.

그러나 샬로는 그 보검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한편 샬로는 어디선가 데이가 원대인에게 몸을 팔았다는 사실만을 들어 알게 되었다. 샬로는 데이가 경극에 미쳐 몸까지 팔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데이는 샬로와 함께하고 싶었을 뿐인데.)

- 보검은 데이의 헛된 노력(일방적인 애정)을 상징한다.

3. 일본제국이 중원으로 침략하자, 샬로는 잡혀간다. 데이는 샬로를 살리는 대가로, 일본군 앞에서 공연을 했다. 샬로는 데이가 경극에 미쳐 이제는 일본군 앞에서까지 노래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로써 샬로와 데이의 사이는 틀어지게 되었다. 그런 한편 주샨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샬로 옆 데이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4. 이후로도 데이가 샬로에게 사랑받으려 노력할수록, 샬로는 데이가 경극 속 여인에게 깊이 몰입하며 미쳐간다고 생각한다. 데이는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외면하기 위해, 마약에 빠지며 현실도피를 한다. 마약을 고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지만, 데이의 마음 속 괴로움만은 치유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데이는 연적인 주샨에게 동정받기 시작했고, 데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다.

5.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샬로는 데이가 자신에게 사랑받기 위해 했던 모든 짓들을 까발렸다. 데이가 원대인에게 몸을 판 일,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부른 일 등 말이다. 데이는 샬로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대중들에게 섹스에 미친 동성애자 매국노로 보일 뿐이었다. <<패왕별희>>에서 비극의 정점은 데이가 홍위병 앞에서 주샨(샬로의 부인, 데이의 연적)을 창녀라고 고발하는, 행복을 빼앗아간 이에 대한 복수였다. 복수는 커녕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데이는 이제 샬로에게 깊은 원망을 사게 되었다.

6. 비극의 절정이 지나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광기의 시대는 끝났고, 샬로와 데이는 서로를 용서했다. 샬로는 데이가 제대로 경극에 몰입하고 남성성을 잃어버리기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다. 데이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의 노력은 모두 헛된 것이었고, 그는 지금껏 거짓된 미래를 쫓았던 것이다.
데이는 원래부터 샬로와 맺어질 수 없었다. 그 정도는 이미 깨달았지만, 마약 등으로 외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체감해버렸다. 데이는 패왕(샬로)의 연인 우희(데이)가 되려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경극은 이미 문화대혁명 때 생명을 잃었다. 평생 홀로 경극 속에 살았던 데이는, 어떻게 해야 행복을 찾을 지 알 것 같았다.

7. 데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패왕별희>라는 경극에서 퇴장한다. 그의 죽음은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 샬로에 대한 집착을 버림.
- 경극을 마무리 함.
- 지금까지의 죄를 씻어냄 등.


* 데이의 잘못된 노력 : 샬로를 경극 속 패왕으로 만들어 그 애인인 우희로서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자 함. 그래서 영웅의 상징인 보검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샬로에게 선물함.
* 데이가 진실이라고 깨달은 것 : 샬로가 경극 속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경극 밖으로 자기 자신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에겐 경극 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에, 경극 속 우희로서 죽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