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하려면 몰입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몰입할 것인가? 바로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인물이다. 특정 소중한 사람, 숭고한 명예, 우정, 희생정신 등에 광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집착하는 인물이 보통 감동을 준다. 문제는 이 광기라는 것이 감동을 주려면, 그가 뛰어넘기 어려운 시련이 있어야 한다.
(설명에 문제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1. 공허와 슬픔 : 과거와 현재의 괴리감
아름다웠던 과거가 있고, 삭막하고 숨막히는 현재가 있다. 주인공 역시 현재에 살아가는 인물로서 고통받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버팀목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 과거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주인공은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로, 한가지의 순수함이 있다. 가족을 너무너무 사랑한다거나,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거나, 한가지 맹세를 죽어도 지키려 했다거나.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주인공은 순수함의 소유자이다.
주인공의 순수함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변한다. 그러나 주인공만은 대쪽같다. 만약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이 죽거나 주인공을 배신하는 등으로 곁을 떠난다거나, 평생 사랑하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거나, 맹세를 못지키게 되었을 때, 비교적 뻔뻔한 현대인과는 달리,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위태로움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 위태로운 인물은 비로소 자신이 무너지고 말았을 때에도, 여전히 자신이 그리워하고 간직하던 것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
행복/불행을 대조하는 플롯에서 이런 인물의 면모를 강조하도록 훈련한다. 미스테리함과 흥미로움을 다른 요소(호러, 코미디, 서스펜스 등)로 유지할 수 있다면, 주인공이 그리워하는 행복하던 시절은 뒤늦게 제시하여 대비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가령, 이렇게 간단한 에피소드를 써 볼 수 있다.
[어떤 치매 걸린 할머니는 매주 돼지껍데기를 샀다. 어느 날, 그 보호자인 며느리가 그 노인을 옆에 끼고 다가와 정육점 주인에게 화를 내며 말한다.
“더 이상 어머님에게 돼지껍데기를 팔지 마세요.”
그 말을 옆에서 들은 치매 할머니는 눈치를 보다가 주저 앉아 엉엉 울었다. 정육점 주인으로서는 참 난처했다.
어느 날 또 할머니가 찾아오자, 정육점 주인은 허리 숙여 사과한 뒤 돌려보내려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지팡이로 정육점주인의 머리를 때렸다.
다음 날엔 보호자가 나타나 사과하며 위로금을 주었다. 며느리는 ‘옛날엔 상냥하기만 했던 시어머니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울며 한탄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치매 할머니가 천애고아인 며느리를 친딸처럼 받아들여주었다는 것까지 알게되었다.
치매 할머니는 그 이후로 집안에 갇혔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정육점주인은 괜히 신경쓰여 돼지껍데기를 싸들고 그 집을 방문했다.
문을 열고 맞이하는 치매 할머니. 할머니는 정육점주인 손에 쥔 돼지껍데기 든 봉투를 빼앗아들어 방안에 후다닥 들고갔다. 그 이유를 며느리에게 묻자 화를 내며 모른댄다. 아무래도 노인은 며느리를 무서워하는 눈치이다.
(단편 기준 갈등 해결방법 : 정육점 주인은 호기심을 느껴 주변 노인정에 알아보니, 치매 할머니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20년 전에 할매의 죽은 아들이 부부싸움했을 때 꼭 아내 먹일 돼지껍데기를 사 갔다더라고, 그 할매가 옛날에 이야기를 하더이다 설명해주었다.)
1) 단편 시트콤의 결말 : 그 이야기를 며느리에게 들려주니, 그 후로는 할머니가 돼지껍데기를 사러 오지 않았다.
2) 중~장편의 전개 : 정육점 주인은 악화되어가는 며느리/시어머니의 갈등을 걱정한다. 먼저 갈등의 골을 표현해야 한다. 가령 며느리는 사실 돼지껍데기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생전 무뚝뚝한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노인이 돼지껍데기를 사오는 걸 아들만 예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표현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행동에 서운하고, 시집살이가 외로워졌다.
그 이후 시어머니의 또다른 소중한 사물을 등장시키거나, 정육점 주인은 그 집안 고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또다른 조력자를 찾는 식으로 진행된다. 노인의 아들이 생전 친했던 이들이라든가 말이다. 다만 이렇게 극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노인 혹은 그 며느리와 정육점 주인이 엮여나가야 한다. 어쩌면 그 죽은 아들이 정육점 주인의 학창시절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마지막 순간이나 절정부 주변에 노인의 순수함과 진심을 알아챌 수 있는 힌트를 제시한다. 그리고 며느리는 자신이 노인과 남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스스로 깨닫고 엔딩.]
위와 같이 (서툰 형태이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의 과거 기억을 뒤늦게 드러내는 형태는 대비효과가 분명하다. 즉 현재의 불행이 극에 달했을 때, 행복한 과거의 기억을 대비시키는 방법의 일종으로 반전과 돼지껍데기의 의미를 강조한다.
배치를 바꾸어 치매 노인이 아들에게 돼지껍데기를 사는 이유를 듣는 것을 첫 장면으로 둔다면, 극이 진행될수록 소통불가로 인한 안타까움이 고조되는 구조일 것이다. 만약 치매 노인이 죽은 후에 정육점 주인이 며느리에게 돼지껍데기의 비밀을 말해준다면, 비극으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
여기에서 치매는 소통불가라는 시련을 주는 동시에, 노인이 옛날에 머물러있게 하는 장치이다. 또, 돼지껍데기라는 사물을 통해 노인이 예나 지금이나 가족의 화목을 지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면 며느리는 돼지껍데기의 의미를 오랜 세월동안 잊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위의 ‘돼지껍데기’ 같이 소비되는 소재보다 ‘인형’, ‘반지’, ‘목걸이’, ‘무기’ 등 본래 상징성이 강한 소재를 채택하여 극 전체에 지속적으로 등장시킬 필요가 있다. 이 소재 자체에 들어있는 에피소드들이 깊이를 더할 것이다. ‘아빠가 처음으로 준 인형’,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 준 목걸이’, ‘내가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이에게 준 검’ 등 다양한 소재를 선택할 수 있다.
- 정리하자면, 아름다운 과거가 순수하고 아름다울수록 현재는 암울한 편이 좋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물은 아름다운 과거의 의미를 함축하며, 극 전반에 등장해야 한다. 아름다운 과거와 암울한 현재의 대비하는 방법으로는 먼저 절정부에 ‘사물’의 비밀을 등장시키는 반전의 플롯, 다음으로는 ‘사물’의 비밀을 주인공 말고는 몰라 안타까움을 지속적으로 자아내는 플롯이 있다.
2. 성취감 : 무모함과 광기
청춘은 사랑을 위해, 아버지는 딸을 위해, 친구는 다른 친구를 위해 기꺼이 사지로 뛰어들 수 있다. 비록 천 명의 적이 그 앞을 막아설지라도.
작가는 주인공의 적을 굉장히 강력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이 그 적을 이기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간직한 어떤 마음을 너무 강력하게 수호하다보니,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기꺼이 5%, 2%, 심지어는 0.1%의 확률에도 도전한다.
그 과정은 당연히 처참하다. 싸움이라면 주인공은 당연히 피 범벅이 되고, 눈과 볼은 푸르게 부어있다. 인간관계라면 주인공은 반드시 한 사람을 위해 무자비하게 매도당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너무나 믿음이 강력한 ‘감정의 화신’인 주인공은, 오히려 로봇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끝끝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지켜낸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잃어도 상관없다. 심지어 목숨까지 말이다.
친구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서, 해당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천 명의 추격자들과 대치한다. 당연히 주인공의 무기는 칼 한 자루. 승산이 전혀 없다. 그는 팔을 한 쪽을 잃었고, 끝끝내 다리 한쪽마저 잃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적장의 목을 베어낸다. 추격보다 더 큰 문제를 맞딱들인 적들은 혼란에 빠지고, 주인공은 승리의 미소를 짓고 죽는다. 한편 그 사이 친구는 눈물을 머금고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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