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2. 히로인과 주인공의 관계

취미와 문화 2022. 6. 2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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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인공이나 히로인 중 한 명은 [사랑, 우정, 가족, 자아 찾기] 등의 가치 중 몇 개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거세당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붙들고 있는 그 몇 안 되는 가치를 처절하게 지키려 한다. 사랑에 배신당해도, 우정에 배신당해도, 가족을 잃어버렸다 해도, 자아를 잃어버렸다 해도, 그/그녀는 끝까지 그것을 되찾는 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한쪽이 그렇게 거세당했다고 할때, 다른 한쪽은 [현실적]이다. 상대방의 광적인 믿음을 받아줄 역량이 있다면, 서로 인간적 사랑에 빠지는 플롯이 될 것이다. 한편 상대방의 광기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둘은 끝끝내 이별을 맞고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 자아가 없고, 남의 말만 듣던 살인기계 주인공 vs 살인은 꿈도 못 꾸지만, 주인공의 상처를 사랑으로 달래주며 자아 찾기를 도와주는 히로인.(해피엔딩 기대)
- 가족과 사이가 틀어져, 가족 생각만 하면 고통스럽고 화나는 주인공 vs 새로운 가족이 되며 주인공에게 가족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는 히로인(해피엔딩 기대)
- 모두에게 버림 받아, 한 사람에게만 집착하는 주인공 vs 주인공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연인들과 현실 세계를 살아가려는 히로인(비극 기대)
- 히로인을 속여 진짜 친구를 구하려는 주인공 vs 우정이 있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히로인에게만은 특별히 우정을 느끼는 히로인(비극 기대)

위와 같은 구도는 흔히 볼 수 있다.

극 전체적으로 봤을 때, 궁극적으로는 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을 추구한다. 애초에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직접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
- 주인공 : 강력하지만 자아정체성이 없다. 나란 것은 사회에 끼치는 강력한 힘에 불과한가? 외롭다.
- 히로인 : 연약하지만 자아정체성이 확실하다. 약하기에 사회적으로 멸시당한다. 외롭다.
=> 히로인이 지혜롭게 (힘 밖에 몰랐던) 주인공과의 내기에서 승리하고, 주인공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며, 위기에서도 구원해준다. 히로인은 주인공에게 하나의 종교가 되어 자아를 찾고, 히로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주인공을 얻게 되어 외로움을 해소한다.

하나의 큰 구도, 지향은 위와 같은 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 이제부터 문제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과정, 즉 에피소드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역시 예를 들어보자 :

위의 관계성이라면, 고난/악당은 주인공을 사회적으로 괴롭히는 녀석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강력한 힘 때문에 주변 사람을 죽게 만들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매도당하기도 하고,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히로인은 주인공의 곁을 지켜준다.
주인공은 히로인에게 서서히 감화되고, 동료를 하나둘씩 모을 수 있는 인망을 갖춘다. 여전히 주인공은 독선적이지만, 동료들을 사랑하는 나머지 홀로 희생하려는 경향을 띤다. 하지만 동료들은 생각만큼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주인공/히로인 두 사람 간의 관계가 진전이 되면, 히로인을 잃을 뻔하는 에피소드를 집어넣는다. 히로인이 납치/실종/사망/배신의심 등의 이유로 곁에 있을 수 없을 때, 주인공은 원래 가진 강력한 힘을 남발하지만 문제해결은 되지 않는다. 그때 주인공보다 약하고, 히로인만은 못하지만, 히로인의 가치관을 닮은 조력자를 투입하여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 기타등등의 방향이 있다.

이런 가치관을 설정하지 않았을 경우, 주인공의 ‘히로인 수집’이 시작되고 만다. 하렘/역하렘 특유의 작위적인 향기, 수동적이고 특이한 머리 색깔, 뛰어난 몸매 등만 두드러지는 것은 이런 문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식의 가치관 얽힘보다는, 히로인 수집이 현 트렌드에 맞다. 남자는 남자 주인공에만 몰입하고, 여자는 여자 주인공에만 몰입하는 경향 때문이다. 상대방/히로인/로맨스 본부장님이 어떤 문제로 주인공에게 토라지거나, 삐지거나, 반대하면 죽여야 한다.

2. 가치관의 문제
- 엇갈리는 작은 가치관이 문제해결 과정에서 드러난다. : 평소 티격태격대는 관계가 형성된다. 하지만 내심 서로 애정을 가진다.
- 서로 간에 거대한 차이를 가진 것 처럼 보인다. 서로 상극에다가 전혀 반대의 신체/상황 속에 놓여있지만, 사실은 서로가 같다는 걸 깨닫는다. : 작은 것을 계기로 서로가 통한다는 걸 내심 깨닫지만, 대부분 부정하거나 외면하거나 깨닫지 못한다.

3. 서로의 본성/본질을 봐줄 줄 안다. 주인공이나 히로인이 평소 남들에게 보여져 괴롭힘 당했던 거대한 단점은, 상대방에게만은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 된다.

4. 동화/교화가 일어난다. 주인공/히로인의 거대한 단점, 부족, 결핍은 상대방으로 인해 채워진다. 가령 만화 <이누야샤>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반쪽짜리 요괴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트라우마때문에 사랑에 비관적이지만, 히로인은 주인공의 콤플렉스는 전혀 상관 안 하고, 주인공에게 사랑도 준다. 한편 주인공은 다른 세계에 떨어진 히로인의 안전욕구를 채워준다. 이런 식으로 서로 애정을 키운다.
이렇게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인 후, 나중에는 그저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플롯으로 이어진다.

5.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플롯을 짜는 방식은 다양하다.
- 한쪽이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 한쪽이 죽었지만,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 먼 곳으로 떠났지만, 그/그녀가 살아있다는 걸 안다.
- 너는 내 곁에 있지만, 옛날의 네가 아니다.
- 너와 나의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
-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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