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7. 소설쓰기 : 애정의 표현

취미와 문화 2022. 6. 2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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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장신 미남에 재벌 3세인 00제약 본부장님이 악바리 성격의 여주인공 연구원 강한나씨를 앞에 세워두고 말한다. “나… 어떻게 하지? 이젠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야. 사랑한다. 강한나!”(본부장님이 키스를 하려 고개를 숙이자, 강한나는 잠시 혼란스러워하지만 눈을 감는다.)

위와 같은 직설적인 사랑표현이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가는 데에 빌드업을 세우는 건 상당히 곤혹스럽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설득력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래 사랑은 이성적인 것도, 이해관계에 의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 글에서는 간단한 플롯을 짜보는 걸 목표로, 섬세하지 않고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 걸로 시작한다.

(*주의 : 어디에서 공인된 건 아니니 걸러보길 바란다.)
(*참고 : 여기에서 ‘주인공’이란 감정이입의 대상을 말한다. 메인 주인공, 서브 주인공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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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시작점

- 공통의 위기 속 서로 의지하는 주인공들
두 주인공은 함께 불난 건물에 갇히거나, 너무 심한 업무에 치이는 등 같은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서로를 도우며 의지한다.

한편, 패왕별희에서는 두 주인공이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나 낭만적인 구시대에 살며 고통을 받는다. 연약한 (주인공 1)은 (주인공 2)에게 심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남자답고 강건하고 리더다운 (주인공 2)는 (주인공 1)에게 딱히 의지하지는 않는다. 즉, 짝사랑 플롯의 시작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극중에서 사랑의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누어보자.

- 소꿉친구 클리셰
두 사람은 소꿉친구다. 그것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므로, 클리셰라고 할 수 있다.

- 역하렘/하렘물 유형
주인공은 뛰어난 성품으로 어필하고, 상대방은 자신의 뛰어난 매력(육체미, 문제해결력 등)을 어필하며, 주인공은 연애고자. 이 세 가지의 조건이 성립되면, 상대방이 몇명이든 상관없다.
하렘물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매력있는 캐릭터로 설정된다. 그리고 눈치가 없다. 계기를 만드는 주체는 주인공 주변 인물들이다. 주인공은 그저 그들에게 친절할 뿐이다. 주인공의 뛰어난 성품에서 나온 작은 친절들이 상대방들의 마음을 뒤흔들며, 상대방들은 연적들에게 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 서로 선남선녀. 외모가 내 스타일.

이렇게 사랑의 계기는 언제나 사소하지만, 사랑의 발전은 다른 문제다.
1) 같은 사건에서 두 인물이 동시에 서로 다른 위기를 겪지만, 오해가 있어 한쪽이 다른쪽을 미워한다.(오해가 풀리면 우정이든 사랑이든 성취)
2) 두 인물이 같은 위기를 겪지만, 한쪽은 상황이 버겁고 다른 한쪽은 강하기에 버틸만 하다.(비련의 여주인공 캐릭터. 강한 쪽이 교훈을 얻으면 서로 우정/사랑 성취, 계속 엇갈리면 비극 엔딩)
3) 같은 위기를 겪고 극복하지만, 한쪽은 그것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만, 한쪽은 딱히 의미를 두지 않는다.(짝사랑 이야기. 대개 비극으로 엔딩)
4)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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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적의 등장
1. 연적은 주인공이 아니다. 고로 연적 캐릭터의 과거는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다. 다만, 연적은 마냥 악역이지만은 않은 감초이다. 즉, 연적이 주인공을 어떻게 자극하느냐가 작품의 매력 포인트를 만들어준다.

2. 연적과 [짝사랑 상대] 주인공의 만남과 사랑은 우연적이다.
그들의 만남에 딱히 계기는 없다. 연적이 만약 그/그녀의 ‘소꿉친구’인데 딱히 하자가 없다면, 독자들은 연적에게 더 이입해버릴 수 있다.

3. 주인공을 자극하는 건, 연적의 악의가 아니라 선의이다.
연적 캐릭터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랑을 꿈꾼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자 한다. 그 친절이 주인공의 눈에는 괜히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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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상대방을 짝사랑할 때의 감정선 = 사랑을 시작하지 못할 때의 감정선
: 딜레마로써 표현한다.

1. 질투(자존심과 명예, 안정 vs 사랑)
- 질투의 방향은 누구를 향하는가?
보통은 나를 선택하지 않은 상대방을 향한다. 하지만 그에 복수를 선택하지 않는다.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도 있으니까.

- 그렇다면 내가 짝사랑하는 상대방과 사랑에 빠진 그/그녀(연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옛 중국 황실에서는 연적에게 피의 복수를 하곤 했다. 흔한 치정 싸움이다. 하지만 극중에서 주인공은 질투라는 이유로 그렇게 선을 넘지 않는다. 특별히 연적을 미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열등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연적을 내 짝사랑 상대의 곁에서 제거하려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 항상 다음의 경우처럼, 선을 지킨다.

1)) 주인공은 연적을 적당히 친구로 두면서 마음을 숨기다가 관계의 파국을 맞는다.

2)) 처음부터 연적을 적당히 싸늘하게 대하면서 서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두 가지 이외의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언제나 연적을 상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만약 순진무구한 연적을 해한다면, 주인공은 악당으로 전락한다.

2. 일방적인 노력이 외면당한 슬픔(노력으로 얻어지는 현실의 가치 vs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사랑)
나는 상대방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나의 진심은 닿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연적이 더욱 사랑받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노력 대신 현실도피를 택하기도 한다.

* 현실도피 :
- 상대방을 잊기 위해 일을 너무 열심히한다 : 결국 쓰러지는 우리의 주인공. 상대방은 눈치도 없이 병문안을 와서 ‘왜 이렇게 무리했냐’며 다그친다. 주인공은 내심 슬프기 짝이 없다.

- 일을 내팽개친다 : 역시 상대방이 와서 ‘너 요즘 왜 그러니?’라며 설친다. 그것 역시 슬프다.

- 다른 남자/여자를 만난다 : 상황 악화

-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상념에 빠져있다 등.


3. 너를 볼 때 느끼는 아릿한 심정 (현실 vs 이상향으로서의 사랑)
‘왜 나는 너의 짝이 될 수 없는가’와 같은 생각을 하기 이전에, 나와 연결되지 않은 그/그녀를 볼 때 나는 무너지고 만다. 나의 이성과는 별개로 나의 몸은 상대를 이미 나의 반쪽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에게 짝이 생겨 사랑을 나눌 경우, 나는 몸의 절반을 상실한 것 이상의 고통을 느낀다. 이 고통을 표현하는 건 간드러진 심리묘사로도 가능하다.

4. 자기파괴 행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사람은 자책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구속한다. 만약 나 자신이 그 구속을 벗고 튀어나가려 한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벌을 줘야 한다. 인간관계 자체를 부숴버리려 하거나, 연적을 따라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자기파괴란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을 부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직업에 갖던 자부심, 친구들과의 의리, 자기 외모의 아름다움 등 자신의 정체성에 치명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속성보다 사랑의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 자기 파괴 행위를 위해, 보통 사람들이 겪는 딜레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의 광기에 의해 잠시 묻힌다. 그리고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 되었을 때, 그 자기파괴 행위는 후폭풍을 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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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적이 주인공의 마음을 알아챘다. 그 이후 연적이 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큰 분기점이다.

1. 주인공을 동정한다 : 주인공이 연적을 더 미워하고,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2. 주인공에게 미안해한다 : 위와 같다

=> 이처럼 연적이 주인공에게 호의적일수록, 주인공의 분노는 강해진다.

3. 주인공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연적 : 오히려 두 주인공 사이가 파국을 맞는다. 비극의 시작점이 된다.

4. 주인공을 견제한다 :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며, 이후 연적의 탈락을 암시한다. 결국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어지면서 해피엔딩. 연적은 서브남주/서브여주와 연결되며 왕도적인 전개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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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정
주인공, 짝사랑 상대방, 연적. 이 세 사람은 여러 갈등에 휩싸이다가, 갈등의 절정을 맞이한다. 이때까지 갈등의 중심에 있던 짝사랑 대상 ‘상대방’의 캐릭터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지금껏 주인공의 성격이 갈등을 주도했다면, 이 갈등을 끝내는 건 상대방이다.

- 비극 1 : 모든 사랑은 무너진다. 주인공과 상대방의 우정은 부서진다. 상대방과 연적 사이 사랑은 배신당한다.

- 비극 2 : 주인공과 상대방의 우정만 부서진다. 상대방과 연적은 여전히 사랑한다.

- 해피엔딩 1 : 주인공과 상대방의 우정이 사랑으로 전환된다. 연적은 사랑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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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비극의 기초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구조화하기]

1. 비극적 사랑의 시공간적 한계
- 사랑이 가능한 공간이 한정적이다 : 거울 너머로 보이는 이세계의 너.
- 사랑이 가능한 시간이 한정적이다 : 시간여행물.
- 사랑이 가능한 상황이 한정적이다 : 범인과 경찰, 의사와 환자, 선생님과 학생 등 금단의 사랑.

2. 비극을 극대화하기
- 어떤 계기로 사랑의 시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계를 외면하고 있었던 이야기. 금단의 사랑 이야기에서 주로 보이는 플롯.
- 두 연인이 서로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 서로를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엇갈린다. 그리고 두 명 다, 사랑의 방식때문에 저마다의 파멸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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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인간관계 표현을 위한 연출

[우정(친구, 연인 등 중요한 타인)]
주인공 곁의 중요한 타인에 설정된 기본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다.
* 여자주인공의 중요한 타인
1) 그 타인이 남성이라면 존잘남이거나, 듬직하거나, 멋있거나, 귀엽거나, 유머러스하는 등 통상 여성에게 잘 먹히는 스타일이어야 한다. 즉, 뛰어난 남성이어야 우정을 쌓을 수 있다.
(이 조건이 충족되면, 남성향의 전제조건 1)~3)을 추가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가령, 장애인인데 못생기고 매력포인트가 없다면, 극에 등장할 수 없다. 그러나 장애인인데 잘생기고 천재일 경우에는 오히려 ‘장애인’이라는 점이 극적 매력포인트가 된다. 거기에다 여자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가정폭력을 당하고, 남자주인공이 먼저 여자주인공의 상처를 알아채고 치유해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자체로 우정을 테마로 한 극이 만들어진다.)
2) 매력없는 남성의 경우, 최소한 ‘무해’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동성애자 남사친 캐릭터.
3) 여자주인공에게 중요한 타인이 여성이라면 어떤 종류, 어떤 스타일, 어떤 종이라도 딱히 상관없다.
전통적 여성캐릭터는 함께 있음과 공감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을 우정에서 중시한다. 즉, 중요한 타인이 주인공과 기꺼이 같은 처지에 있기로 하는 것이다. 단, 주인공이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어야 성립한다. 주인공이 그 타인을 싫어하면, 혐오감을 갖는다.
물론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

* 남자주인공의 중요한 타인
1) 주인공의 콤플렉스(어떤 기능의 부재)를 보완하거나 가려주는 타인.
2) 주인공과 같은 고통을 받은 전적이 있는 타인. 동료애가 있는 전우, 유부남 등.
3)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주인공에게 무언가 소소한 선물이나 진심어린 조언을 해 주는 타인.
4) 아무리 예쁜 여자(다수의 여자가 남자를 짝사랑할 경우)라도 남성향의 우정이 생기려면 기능적으로 뛰어나야 한다. <<추노>>에서 ‘언년이’에게 정 붙인 사람이 별로 없듯이, 민폐와 소극적 태도는 오히려 독이다.


(추가/수정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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