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일기본조약과 대법원 판결에 대한 주관적 정리

취미와 문화 2023. 3. 2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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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필자의 주관이 녹아있음.

국내 대법원의 판단에 대하여, 국내의 국제법 학계에서는 한일기본조약에서 (최소한 ‘배상’ 문제는) 일단락되었다는 입장이 여러 번 제기되었다. 국제법 학자로는 대표적으로 서울대 이근관 교수가 있다.

이근관 교수 등에 대한 비판자는 경북대 김창록 교수가 있다. 김창록 교수는 국내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해설을 내놓으면서, 여러가지 논점을 제시하였다. 그 중에 역사과에 관련된 문제는 ‘징용’과 ‘강제동원’의 용어적 문제였다.

- 징용 : 일제가 전쟁수행 시 1939년에 제정한 <국민징용령>에 의거하여, 일본인과 한반도 거주민들을 ‘합법 동원’ 했다는 용어로 사용되었음.
- 강제동원 : 1910년 한일병합조약 이후 모든 식민지 법들의 불법성에 의거하여, 강제로 인민들이 동원되었다는 용어.

1. 1910년 한일합병조약의 불법성의 한일 간 문제인식 차이
1) 일본 측 법원들은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을 인정하여, (당시 <국민징용령>에 의거하여) ‘징용’ 당한 이들에게 떼어먹은 돈을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이미 ‘보상’했다는 입장이었다. 고로 원고(‘강제동원’ 피해자 측)의 소는 기각하였다. 국민징용령에 입각하여 합법적으로 징용하였기에, 일본의 기업은 피해자 측에게 체불된 임금을 입금하면 된다.
2) 한국 측 대법원에서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여, ‘강제동원’ 당한 이들에게 식민지적 폭력이 작용했다고 판단하였다.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우리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이상, 당시 일본은 한반도의 점령을 불법적으로 행하였던 것이 인정된다. 가령 미쯔비시에 동원된 피해자들은 일제 군인, 경찰의 통제 아래 이루어졌고, 기타 전범 기업들은 일제 정부의 협조 아래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것이다.

2. 징용 ‘보상’과 한일기본조약
과거에 외교문서와 정치권의 각종 위원회에서 나오는 용어는 혼란스럽게 사용되었다.
이근관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과거의 제5차 한일회담 회의록에 이미 ‘보상’의 문제가 한국 주도로 이루어지기로 약속되어 있었고, 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시 청구권이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이근관, <한일청구권협상 강제징용배상청구권 처리에 관한 국제법적 검토>, <<서울대학교 법학>> 제 54권 제3호, 2013. 페이지는 상기 참조.

협상 당시에 논의되고 있는 ‘보상’에 현재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가 포함되었다는 논지였다. 또, 한국 측이 제기한 ‘보상 청구금’에 노무자, 군인 등이 포함되어 있기에, 정상적인 ‘배상’의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입장을 더하였다.

위와 같은 논문

(필자를 포함한) 일반 국민들이 언뜻 보기에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호의적으로 (현재와 같이) ‘한국 정부 주도의 제3자 변제안’을 채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본 내 법원들의 입장에서는, 식민지의 불법성을 인정한 바 없다. 그에 비추면 일본 측이 주장하는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이라는 제안은, 식민지적 강제성을 부정하는 ‘징용’에 대한 보상이거나, 거기에 더해 세계대전 패전으로 급히 한반도에서 떠나며 끼치게 되는 기업에의 피해를 보상하는 것을 염두해둘 순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그 당시에 제대로 부각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사적 고려가 필요하겠다.
2023년 현재 한일정상회담과 비교하여 볼때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도 엄밀한 접근이 필요하겠다.

3. 일본의 ‘독립축하금’ 인식, 한국의 ‘청구권’ 인식
일본은 ‘독립축하금’ 명목, 즉 ‘경제협력 기금’을 한국에 유상+무상 합쳐 5억불 차관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것이 보상금 명목인가? 일본 내에서는 아니라는 입장이 주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 기금’은 ‘청구권’과 별개였다는 당시 일본 외무대신의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다.(김창록, p.801.)
한편 위에서 이근관 교수가 제시했던 한국 측의 ‘보상청구금액’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해석하자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여, ‘일제로부터 사과를 받아왔다’라고 국민들에 공표하는 박정희 대통령 식 ‘민족주의’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는가. 물론 정치논리적 해석 말고는, 한일간 입장차이를 좀 더 명확히 할 만한 자료 근거를 본고의 필자는 아직 찾지 못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국민들에게 ‘사죄를 받았고, 그 사죄를 돈으로 받아왔다’라는 입장을 폈고, 일본의 입장에서는 경제협력이라는 입장을 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어디까지나 학술적 결론은 잠정적이다.

4. 친일 vs 반일?
문제는 현재 벌어진 상황에서, 국민들은 말도 안 되는 판단을 재촉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논점들이 정치적 수사로 둘러싸여 흐릿해진 것이 문제다. 친일인가, 반일인가. 국가에 이익을 주는 존재인가, 국가의 발목을 잡는 존재인가. 나라를 팔아먹는 존재인가, 나라를 수호하는 존재인가. 그 사이에서 중도는 죽어나가고만 있다. 역사를 강조하면 우파도 좌파가 되며, 좌파는 그틈을 타 애국자의 주류가 된다.
결과적으로 국제법학자인 이근관 교수는 대법원 판결에 비판적이 되었고, 김창록 교수는 대법원 판결에 옹호적인 면을 보이게 되었다. 다만 국제법학자 쪽은 식민지 논리에 옹호한 것이 아니고, 청구권 소송에 대한 학술적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또, 대법원 판결을 옹호하는 쪽은 식민지 논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전인수를 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식민지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큰 논리에 국제법학자의 의견을 갖다붙이면 안 된다. 국제법은 국제법이고, 역사는 역사다. 애초에 일제 식민지가 불법이라는 것을 인정하여 '현존하는 피해자들에게 배상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논의가 이루어진다. 
 

* 참고자료
김창록,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권리’ - 일제 ‘강제동원’ 피해 관련 대법원 판결을 소재로>, 경북대학교 대학원 <<법학논고>> 제49집, 2015.
이근관, <한일청구권협상 강제징용배상청구권 처리에 관한 국제법적 검토>, <<서울대학교 법학>> 제 54권 제3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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