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독후감) 과학기술과 여성 연구하기: 신유물론 페미니즘과 과학기술학의 안-사이에서 “몸과 함께”(임소연, 2018)

취미와 문화 2023. 4. 1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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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경험으로부터 비롯하는 담론을 실재하는 구조로 전환시키는 것은 페미니즘의 과제이다. 사실 이 과제 때문에 여성 주도의 관찰에 의한 확신에서 시작하여, 여러 근거를 덧붙이게 되는 (다소 위험한) 행보를 보여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신유물론’이라는 매력적인 담론이 수입되어 페미니즘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꽤 도발적인 시도 아닌가? 나도 관심이 생겼기에, 한 번 훑어보았다.
신유물론은 맑스적 유물론과는 달리, 물질세계에 대하여 ‘앎’과 ‘구조 그 자체의 실존’을 서로 구분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 정도로 보인다. 내가 본 이 논문에서는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페미니즘 철학에 이것을 접목시키고, 한 명의 여성이 ‘관찰 주체로서의 여성’, ‘인식되는 여성’과 ‘물체로서의 여성’으로 분리되는 양상까지 소개된다. 여성이 이중슬릿의 파동처럼 보면 멈추고, 안 보면 움직이는 그런 상태의 중첩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양자역학을 인문학의 영역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 일단 나는 이들 ‘신유물론적 여성학연구자들’이 은유의 의도로 끌어들였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읽은 이 논문의 저자는 성형수술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 자신의 논저를 소개한다. 중첩 상태의 여성은 모델로 삼을 여성의 얼굴을 보며 관찰자가 되고, 성형수술을 받으며 무기력하게 관찰당하는 자가 되고, 의사와 접하면서 살과 뼈로 이루어진 물질이기도 함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가 묘사하는 수술 과정이 어렵고도 복잡하게 쓰여있는데, 여성이 드러나는 다양한 방식이 빠르게 교차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중첩성이 있다’는 속성이 굳이 여성에게 국한되지 않는 것을 인정하며, 여성성에 집중하지 않는 시각의 당위를 주장했다. 거기에 나는 조금 맥이 빠졌다.
‘과학기술과 여성’은 없고, 양자역학의 비유만이 남지 않았는가. 치밀한 묘사는 ‘양자역학 비유 모델을 적용해보는 실험’ 이상의 의의를 갖는지는 모르겠다.
새로운 페미니즘의 양자역학의 비유 자체도 큰 의의를 지니는가하면, 역시 좀 이상한 것 같다. 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모순적인 것이 동시에 주장되어야 할 때 ‘포스트모던’의 이름을 달고 활용되던 양자역학 이중슬릿 실험이다. 이 논문이 그런 기능을 활용하여 여성의 경험과 물질적 속성을 잘 녹여내었다고 확신을 못 하겠다. 시인 김지하의 ‘민족적 비빔밥 정신’ 이론과 같은 수법인 것인지, 심오한 무언가가 더 있는 것인지 확신은 안 선다.
담론과 구조의 훌륭한 연결이 이 접근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 아마 늪에 빠져버린 것 아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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