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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근대사 24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경재소와 유향소란?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경재소와 유향소란? 경재소(京在所)와 유향소(留鄕所)는 14세기 말 왕조 교체기에 신흥사대부라고 이야기되는 세력이 성리학적 향촌사회를 확립하려는 과정에서 서울과 지방에서 설치된 것으로 보임. 경재소는 유향소를 견제하는 기구로 흔히 알려져 있음. 유향소는 해당 지역의 관리들을 관리하고 풍속을 곧게하는 고려시기 사심관에서 기인했다면, 경재소는 중앙집권적 기구로서 지방자치 성격을 가진 유향소를 감시하는 역할을 했음. 예조에서 아뢰기를, "삼가 고려 때의 사대부(士大夫)의 호구(戶口) 법식을 상고해 보건대, 단지 사조(四祖)만을 기록한 것을 사조 호구(四祖戶口)라 하고, 그 조부모·증조부모·외조부모·처부모의 사조(四祖)를 갖추어 기록한 것을 팔조 호구(八祖戶口)라 하였는데, 지금 팔조 호..

한국 전근대사 2021.04.24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직전법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직전법(職田法) "革科田, 置職田。(과전(科田)을 혁파(革罷)하고 직전(職田)을 설치하다.)" - 39권 세조 12년 8월 25일 1466년 세조 시기에 시행된 직전법의 핵심 논점은 2가지로 꼽을 수 있음. 1. 전직관료(散官)의 수조권 혜택을 없애고, 오로지 현직관리에게만 토지 수조권을 인정한다. 2. 수신전과 휼양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과전법 아래 벌써 경기도의 수조권이 모두 배분되어버렸음. 새로 뽑힌 관리들에게 수조권을 주어야 하는데, 수조권이 걸리지 않은 경기도 땅이 없었음. 경기도의 땅을 확보해야 수조권을 지급할 수 있겠음.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전직관료(산관)의 수조권 혜택을 빼앗고, 수신전과 휼양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음. 경기도에 여분의 토지가 이로써 생기긴 했으나,..

한국 전근대사 2021.04.23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경제사 - 1391년 (공양왕 3년) 이성계와 조선건국세력의 '과전법'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경제사 -1391년 (공양왕 3년) 이성계와 조선건국세력의 '과전법' 과전법(科田法) 과전법의 기본적인 방향으로는 "전국의 토지를 일단 국가수조지로 편성한 위에 그 수조권을 국가재정의 용도에 따라 각 기관에 분속시키고 다시 중앙·지방의 관인층과 직역인에게 그것을 절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개혁의 동기가 무엇보다도 조업전적 사전의 혁파와 관련하여 추진되었던 만큼, 결과적으로 국가 수조지가 크게 확대되고 개인 수조지는 크게 축소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 과전법에서 설정한 여러 토지 종목 가운데서도 관인층에게 절급하는 과전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분급수조지였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공신전의 경우와 같이 특수한 공훈과 연관하여 절급되는 것이 아니라, 현직자는 물론 전직..

한국 전근대사 2021.04.23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성종 시기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성종 시기 13살 난 자을산군(성종)이 차기 왕이 되었음. 자을산군은 본래 왕위 계승 순위가 아니었으나, 세조비의 간택을 받았음. 마침 어린 자을산군의 비가 한명회 딸이었음. 당시 성종을 왕위에 올리려던 파가 남이장군을 필두로 무너지게 되고(유자광이 남이 장군이 역모를 꾀한다고 고발하였음), 한명회 같은 인물이 이미 정권을 잡은 상황이었음. 이들은 세조 훈척으로 대표되는 이들로서, 흔히 사림과 대비되곤 함. 자을산군, 즉 성종이 나이가 어린 관계로 세조비가 7년 간의 수렴청정을 하게 됨. 그 동안 당연히 훈척들이 점점 강성하고 있었음. 성종이 집권했을 때는 이미 훈척들의 권세가 대단했을 것임. 고로 성종은 반-훈구(훈척) 정책을 펴야 했음. 즉, 반 훈구로서 '사림파'라는 이들이 ..

한국 전근대사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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