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근대사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성종 시기

취미와 문화 2021. 4. 1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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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정리노트] 성종 시기

 

13살 난 자을산군(성종)이 차기 왕이 되었음. 자을산군은 본래 왕위 계승 순위가 아니었으나, 세조비의 간택을 받았음. 마침 어린 자을산군의 비가 한명회 딸이었음. 당시 성종을 왕위에 올리려던 파가 남이장군을 필두로 무너지게 되고(유자광이 남이 장군이 역모를 꾀한다고 고발하였음), 한명회 같은 인물이 이미 정권을 잡은 상황이었음. 이들은 세조 훈척으로 대표되는 이들로서, 흔히 사림과 대비되곤 함.

  자을산군, 즉 성종이 나이가 어린 관계로 세조비가 7년 간의 수렴청정을 하게 됨. 그 동안 당연히 훈척들이 점점 강성하고 있었음. 성종이 집권했을 때는 이미 훈척들의 권세가 대단했을 것임. 고로 성종은 반-훈구(훈척) 정책을 펴야 했음. 즉, 반 훈구로서 '사림파'라는 이들이 대거 기용된 것임. 

 

1. 사림중용(김종직 등) : 성종은 즉위 15년, 1484년에 김종직이라는 사람을 도승지에 삼음. 도승지는 승정원의 머리로서, 인사 업무를 이조의 역할을 분담했음.

 

[* '사림'이란? : 훈구에 대립된 의미의 '사림'이란 용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림이라는 용어가 현재 통용되는 것처럼 조선  성종대 이후에 사림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또한 훈구 대신 중에도 역시 사림이 존재할 수 있다. 물론 훈구는 공신에 책봉된 자를 뜻하므로, 조선 왕조에서는 더욱 좋은 단어이다. 그래서 사림이자 훈구라면, 훈구로 칭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고로 훈구 관련 기록이 더 많다. 사림이란 관료를 뜻할 뿐만 아니라, 선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관료가 되려면 과거시험을 거쳐야 했으니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학문을 연마해야 했다. 그 학문인 유학을 연마하는 사람이 선비였고, 관료를 양산하는 계층인 사족이 바로 사림이었다. 사림의 근본이 관료였으므로 관료와 더불어 그 후보자 계층까지 통칭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생원 진사 등 유생이 사림의 주류는 아니었다. 유생 중 극소수만이 과거를 통하여 관료가 되었다. 더구나 유생은 조정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 유생들이 조선 초 조정의 일에 직접 관여하기 어렵거나 한계가 있었다. 이는 사림의 주류가 유생이 아니라 관료였음을 의미한다."(이희환, <<조선정치사>>)]

 

2. 경연을 전담하는 홍문관 설치 : 성종 때는 사림을 중용하여 3사에 기용하고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을 설치하여 다시금 경연을 강화. 집현전의 기능을 부활시킨 홍문관에서는 ‘경연’과 ‘서연’이 벌어짐. 경연은 왕과 신하들이 논의하면서 공부하는 것이고, 서연은 왕세자와 신하들이 하는 것. 집현전을 계승해서 ‘홍문관’을 만들어. 그리고 여기다가 사림을 대거 기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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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경연이란? 홍문관이란? 경연은 학식 있는 신하들을 모아서 경전을 읽거나 시사에 대해 토론하는 장이었음. 경연은 고려 예종 시기 즈음에 도입을 했다고 하나, 공민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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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향소 복설 : 지방에 있는 유향소를 다시 복설. 세조가 이시애의 난 이후로 없앤 유향소를 다시 부활. 유향소는 향촌의 풍속을 관리하는 지방자치 기구이고, 경재소는 유향소를 관리하는 기구임. 유향소 운영과 경재소는 뗄래야 뗄 수가 없음. 경재소는 태종 대에 처음 설치되었다고 하며, 세종 시기에 전국적으로 설치되었다고 함.

 

유향소(留鄕所)를 다시 세우는 것이 좋은지의 여부를 의논하게 하였다. ... 광릉 부원군(廣陵府院君) 이극배(李克培)는 의논하기를, “주부군현(州府郡縣)에는 대부분 지역 토착민 가운데 같은 성씨를 가진 유력 집단인 토성(土姓)이 있습니다. 토성 출신 가운데 서울에 살면서 벼슬하는 자들의 모임을 경재소(京在所)라고 합니다. 경재소에서는 그 고향에 살고 있는 토성 중에서 강직하고 명석한 벼슬아치를 선택하여 유향소에 두고 유사(有司) 또는 간사한 관리의 범법 행위를 서로 조사하고 살펴서 풍속을 유지시켰는데,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 (현재 간사한 관리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괴롭히는데, 수령이 한 번이라도 그것을 지적하면 몰래 수령의 허물을 기록해 두고 마을 백성을 은밀히 사주하여 그 허물을 폭로시켜 파직(罷職) 당하게 합니다. 그 때문에 수령들도 스스로 몸을 사리면서 날이나 보내게 됩니다. (그 결과) 풍속이 이 지경까지 무너졌으니 탄식이 나올 뿐입니다. 비록 다시 유향소를 세운다고 하여도 갑자기 풍속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간사한 관리들이 꺼려해서 방자하게 굴지 못하는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가 전의현(全義縣)의 관노(官奴)에게 고소를 당하였으니, 그 조짐이 염려스럽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다시 유향소를 세우는 것이 국정(國政)에 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향소에서 폐단을 일으키는 데 대해서는 국가에서 정한 법이 있으니 견제하기 어렵지 않을 것인데, 또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하였다. 심회 등의 의논에 따랐다. - 『성종실록』권137, 13년 1월 22일(신묘); 우리역사넷 (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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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창제 폐지 : 사창제는 지방에서 사족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던 창고. 본래 먹고 살기 힘들면 환곡미를 빌리러 관청까지 가되는데, 관청이 너무 멀리 있음. 그래서 지방 사족들은 동네에 창고를 만들어서 쌀을 모아 다시 배부하는 이런 걸 ‘사창’이라고 부름. "지방 각 군현의 마을에 설치된 곡물 대여기구이다. 농민에 대한 진휼기구 라는 면에서는 의창과 같은 성격이나 의창이 관설의 진휼기구인데 반하여 사창은 마을을 기반으로 한 민간 자치적 성격을 띤 진휼기구이다."(신편한국사 vol.25.)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istory.go.kr) 그런데 사창이 점점 고리대 형식으로 변질이 되어, 그 폐단을 없애고자 성종 시기에 혁파한 것이었음.

 

5. 사가독서제 강화 및 독서당 설치, 존경각 설치(2018 ebsi 김정현 한국사)

 

6. 예악사지에 의한 편찬사업 

  1) 1474년 성종 5<<국조오례의>> : 국조오례의는 조선시대 다섯가지 의례에 대하여 규정한 책. 다섯가지라는 것은 길례(결혼이나 환갑같이 좋은 일이 있을 때의 예절), 가례, 빈례, 군례, 흉례 등 그림까지 다 그려서 설명해놓음. 왕이 입는 옷이나, 백관들과의 회의 절차 등 그림까지 그려서 다 정해놓은 것. 국조오례의는 국가의 모든 규범이 모두 의식화되어 가는 것.

  2) 1478년 성종9<<동문선>> : 문선이란 책은 중국 당나라 때에 만들어진, 모든 장르의 한문학을 집대성한 책. 동문선은 우리나라의 한문학을 집대성한 것. 조선 사람들은 중국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조선을 동국이라고 하였기 때문. 당시 문치가 중요하던 때이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문화적으로 유교문화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3) 1481년 성종 12<<동국여지승람>> : 성종의 명으로 노사신 등이 만든 한국의 인문지리서. 1481년에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지리지이지만, 정말로 조선왕조가 압록강 이남을 팔도로 나누어 문화적으로 하나의 땅으로 선언한 것을 상징하는 책. 

  4) 1485년 성종 16<<경국대전>> : 조선왕조 통치의 근간. 나라를 경영한다는, 문화적, 정치적, 모든 면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기준이 되는 책. 오늘날의 헌법에 해당하는 것. 이 경국대전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조선의 통치기준이 되는 원칙이 됨.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조선의 법전(경국대전 이전) -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경제육전, 속육전, 경국대전 (tistory.com)

(경국대전 이전의 책들은 위를 참조)

  5) 1485년 성종 16<<동국통감>> : 서거정 등이 신라초부터 고려말까지 역사를 편찬한 사서. 통감이란 중국 고대로부터 송나라까지를 편년체로 정리한 것인데, 이것을 본받아 한국 고대사부터 조선건국까지를 정리한 것. 상당한 분량.

  6) 1493년 성종 24<<악학궤범>> : 악학궤범은 유자광, 성현, 신말평 등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음악이론서로서, 왕실에서 쓰는 음악과 사적으로 쓰는 음악을 전부 모아, 음악의 총본을 집대성한 것. 예악으로써 다스린다는 의식이 담긴 것.(서강대학교 고 정두희 교수님 강의)

 

7. 관수관급제 : 직전법은 수신전과 휼양전을 회수하고, 현직관료들에게만 토지 수조권을 지급하는 것으로서 세조 시기에 실시했다고 했음. 그런데 현직관료들은 노후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현직에 있을 때에 다 뽑아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음. 그래서 수취를 가능한 한 최대로 하다보니, 농민들이 당장 먹고살기가 힘들어졌음. 그래서 성종은 수조권 분급 자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됨.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관수관급제 (tistory.com)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관수관급제

[조선시대사 정리노트] 관수관급제 傳曰((대왕대비가) 전하여 말하기를), 人多言職田有弊(사람들이 많이들 말하기를, 직전이 폐단이 많다고 하였네), 故議諸大臣(고로 대신들에게 의논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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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간경도감 혁파,  : 교장(敎藏)이란 "고려 전기 승려 의천이 대장경에 대해 해석한 장소(章疏)를 수집하여 목록을 정리한 불교서, 불교주석서"라고 함. 교장(敎藏)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잘은 모르겠고, 세조 시기에 불교 관련 행사를 치르기 위해 만든 기구로 보이는데, 그것을 성종 시기에 혁파해버린 것임. 성종은 불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함.

 

9. 도첩제 폐지,

도첩이란 국가에서 발급하는 승려 증서. 도첩이 없으면 승려가 되는 것도 불법임. 승려는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힘들다 싶다고 머리 깎아 절에 들어가면 국가 입장에서는 손해임. 세금이 줄어드는 것. 그래서 태조 시기부터 계속해서 도첩제를 강화시켜왔음. 그런데도 계속해서 승려가 생기니, 결국 성종 시기에 도첩제 자체를 폐지하고 승려가 되는 것을 불법화 시켜버림. 역시 성종은 불교를 싫어함. 그래도 승려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음.

 

8. 대외관계 관련 - 최부의 <<표해록>>,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참고자료 : 이희환, <<조선정치사>>, 2018 ebsi 김정현 한국사 종합완성, (신편한국사를 재정리한) 블로그 글, 고 정두희 교수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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