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일기)
번 아웃
번 아웃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정확히 그게 뭔지는 모른다. 대충 지쳤다는 거겠지. 나도 떳떳하게 번 아웃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지쳤으니까 더 이상 노력하기 힘들다고.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다. 나는 그냥 게을렀고, 지금도 게으를 뿐이다.
좀 더 쉽게 쉽게 살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너무 쉬운 인생을 이미 살고 있었다.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삶. 그 삶을 보고도 불만을 갖게 된 나에게 문제가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만족하지 못할 뿐이었으니, 남들의 충고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주의자였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알고보니 모든 게 완벽해지지 않으면 끝까지 문제를 찾아 없애버리려는 성격은 강박증이었고, 비겁함이었다.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까지 뛰어드는 용감한 사내가 아니라, 만만한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나 문제점을 찾는 소인배였을 뿐이다. 나는 완벽주의자일 때에도, 비겁자일 때에도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이 미울 때가 많았다. 나 자신을 미워하는 일조차 비겁했다.
나는 그런 나를 수없이 반성해왔다. 새는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땅에 앉는다고 했다.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닭과 같이 하늘을 굳이 동경하지 않는 인간이어야 했다. '분수에 맞게 살자는 것'을 항상 되뇌어 왔다. 그러나 나의 '분수'란 무엇인가? 남들도 알지 못하는 나의 분수를 나 자신이 어떻에 알아챈다는 말인가? 나도 사실 닭과는 다른 인간이 아니었을까?
나는 닭처럼 살고 있다. 그게 현실이다. 양계닭이 산닭으로 되는 건 과연 가능한가.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왜 새가 하늘을 날아야 하는지조차 의문이 들었다. 새는 하늘을 날면 행복한가? 그저 살기 위해 하늘을 날 뿐인데, 왜 그리도 하늘을 날기를 바라야 하는지. 나는 둥지에 있는 참새인가, 하늘을 못 나는 양계닭인가, 그 의문에 확신도 갖지 못한 채 나는 그저 앞만 보고 노력할 뿐이었다. 아, 그렇지만 오늘만은 내가 참새라고 해도 닭이라 하겠다.
누군가는 가족 품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이해관계를 신경쓰는 시작점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생각과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 사이에 갈등을 품고 살았다. 나는 가족 품에 있지도 않고, 그 바깥에 있지도 않은 모호한 20대인 것 같다. 그 경계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감사해야 하는지, 힘들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의 나는 지쳤다고 믿고 싶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수영 (2) | 2021.04.27 |
---|---|
탈모와 멘탈 (6) | 2021.04.26 |
오늘의 수영일지 - 다리가 후들거린다 (17) | 2021.04.24 |
조심스레 수영장 방문하기. 코로나는 걱정되지만.. (17) | 2021.04.22 |
첫사랑을 실패한 사람들에게 (0) | 2021.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