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조선 왕검조선
고려 원간섭기 역사서들을 보면 일연의 ‘삼국유사’, 이승휴의 ‘제왕운기’. 이 책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공통적인 게 있다면 고조선의 단군. 우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원 간섭기를 당하고 있지만, 유구한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자주국가 설립의 염원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음.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 . 나라를 개창하여 조선(朝鮮)이라 했으니 고[高, 요임금]와 같은 시대이다.” -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처음에 누가 나라를 세워 세상을 열었는가? 석제(釋帝)의 자손으로 이름은 단군(檀君)이라네. [본기(本紀)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는데 환웅(桓雄)이라 하였다. [환인이 환웅에게] 일러 말하기를, “[땅으로] 내려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이르러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弘益人間]?” 라고 하였으므로 환웅은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고 귀신 3,000명을 데리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으니, 이분을 일러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 제왕운기 卷下
서의식 교수에 따르면, "승자가 청동기를 독점하여, 지배층을 형성하고 광역을 지배한 시대에는 그에 버금가는 다른 세력이 복수로 존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두 세력이 서로 혼인을 통해 연맹할 필요가 있었던 사회편제도 아니었다. 이런 연맹의 필요는 철기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제기되었다. 즉, 웅녀의 아들이라는 단군왕검은 철기 시대로 접어들던 때의 단군이다. 그가 조선을 건국한 당사자로서, 기자에게 정권을 넘기기 천 수백 년 전에 처음 아사달에 자리잡고 홍익인간이란 청동기 시대의 이념으로 그 지역을 다스리기 시작한 최초의 단군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던 것이다.”(뿌샘 1권, p.120.) 즉, 단군도 일반명사로서 단군이 있고, 통상 웅녀의 아들 단군할아버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 단군왕검이 있다는 것이다.
고조선의 영역에 대해서는 요령설과 평양설로 나뉘는데, 두 가지 설을 합친 것이 이동설이다. 이동설은 요령에 있던 고조선이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입을 받아 평양으로 이동하였다는 설이다.
우리역사넷
【魏略曰.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使禮西說燕, 燕止之. 不攻. 後子孫稍驕虐,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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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뿌샘 1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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