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서양근대사 정리노트] 프랑스 혁명 (4) 자코뱅, 지롱드, 페이앙 - 91헌법

취미와 문화 2021. 5. 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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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 91’헌법]

이제 17919월에 국민의회에서 91‘헌법이 나오게 됨. 사실 국민의회, 즉 제헌의회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새로운 헌법제정. 헌법에 관한 논의는 이미 1789년 여름부터 진행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가결된 것은 179193. ‘91년 헌법은 새로운 정치체제로서 권력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단원제의 입헌군주제를 채택. 아직 왕이 존재하긴 하지만, 왕의 권위를 대부분 박탈한 것. 이 때에 루이 16세는 바렌 도망 사건으로 아주 망신을 당하고 위축된 상황.

 

국민의회는 스스로 승인하고 선포했던 원리들에 입각하여 프랑스 헌법이 수립되기를 원하는 바, 자유와 권리의 평등을 해치는 제도들을 최종적으로 폐지한다. ... 관직 매매나 공직의 세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은 다음의 사항들을 자연권 및 시민적 권리로서 보장한다. ...

* 모든 사람은 가고, 머물고, 떠날 자유를 갖는다. 그는 헌법이 규정한 형식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 또는 구금될 수 없다.

*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사상을 말하고 쓰고 인쇄하고 출판할 자유와 그가 애착을 갖는 종교 예배를 드릴 자유를 갖는다. 집필한 것은 출판될 때까지 어떠한 검열이나 조사를 받지 아니한다.

* 시민은 치안 관련법을 지킨다면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평화롭게 회합할 자유를 갖는다.

* 시민은 헌법기관에 개별적으로 서명한 청원을 제출할 자유를 갖는다. 입법부는 ... 헌법이 보장하는 자연권 및 시민적 권리행사에 타격을 가하고 방해하는 어떠한 법도 제정할 수 없다.

* 그러나 자유는 타인의 권리와 공공의 안전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보호받으므로 ... 법은 공공의 안전이나 타인의 권리를 공격하여 사회에 피해를 주게 될 행위들에 대해 형벌을 규정할 수 있다. 헌법은 재산권의 불가침성을 보장하며, 공공의 필요에 의해 재산권을 희생하게 될 경우 정당한 사전 보상을 보장한다.

* ... 시민은 종교 의식 집전자들을 선출하거나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 ... 버려진 아이들과 가난한 장애인을 돕고 ... 빈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 ‘공공구제종합기관을 창설하고 조직한다.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무상의 공공교육을 창설하고 조직한다.

* 프랑스 혁명의 기억을 보존하고, 시민들 간의 우애를 유지하고, 그들을 헌법,조국,법에 결합시키기 위해 국민적 축제를 조직한다. 왕국에 적용할 민법전을 제정한다.” - 179193일 헌법

 

이 법의 내용을 보면 샤플리에 법의 직후에 가결된 것으로서, 국가 권력의 자유주의 경제관이 그대로 나타나는 조치로 보임. 중요한 사실은 시민을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으로 구분하고, 참정권을 오직 능동적 시민에게만 부여한 것. 능동적 시민은 3일간의 노동임금에 해당하는 직접세의 납부자로서 약 400만 정도였고, 그들만이 제1차 선거회에 참석하여 시의 관리와 입법의회의원을 선거할 선거인을 선출할 자격을 가졌음. 정리하자면 이 능동적/수동적 시민은 재산으로 구분한다는 것.

 

2절 일차 선거회 선거인 선정

1. 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활동적인 시민은 2년마다 도시와 주에서 1차 총회를 개최해야한다. 1차 총회는 법에 의해 결정된 공무원에 의해 사전에 소집되지 않은 경우 3월 둘째 주 일요일에 제재가 필요없이 제정 될 것이다.

2. 능동적 시민이 되려면 다음이 필요하다 :

프랑스 인으로 태어나거나, 프랑스인이 되어야 한다..

25 세 이상이어야 한다.

법률에 의해 정해진 기간 동안 도시 또는 주에 정주해야 한다.

왕국의 어느 곳에서든 최소한 3일의 노동 가치에 해당하는 직접세를 지불하고, 그에 대한 영수증을 제시해야 한다; 하인의 입장, 즉 임금의 종에 있지 않아야한다; 그의 거주지의 지방 자치체에서 방위군의 직위에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시민의 맹세를 했다.

3. 입법 기관은 6년마다 하루 노동가치의 최소값과 최대값을 설정해야하며, 부서장은 각 부서에 대하여 현지결정을 해야 한다.

4. 어떤 누구도 [자신이 선거인으로 선정된] 한 지역보다 많은 곳에서 시민권을 행사할 수는 없으며, 대리로 적극적인 시민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5. 다음은 시민권 행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소된 자

증빙 문서들(authentic documents)에 의해 파산 또는 지불불능 상태로 신고(등록)되었으나, 그들의 채권자로부터 증명서를 구하지 못한 자. ...” “The Constitution of 1791, 3 September, 1791”, web.archive.org/web/20110726014620/http://sourcebook.fsc.edu/history/constitutionof1791.html, 2020-07-06.검색.

 

[91'헌법의 골자를 정리하자면 : 1. 단원제, 2. 입헌군주제 주장 3. 재산 제한 선거제]

 

[프랑스의 혁명 - 입법의회에서 입헌군주제의 페이앙 당과 공화제의 자코뱅 당의 대립]

불쌍한 루이 16세는 시대를 잘못 읽은 바람에, 바렌 사건 이후 완전히 위축되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음. 신문에서는 혁명을 부르짖었고, 오히려 혁명파와 비혁명파의 사이의 대립은 더욱 더 극명해졌고, 정치문화적인 면에서 혁명에 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성립되고 있었음. 178910월 행진과 바렌 도망 이후로 비혁명파와 온건파가 완전히 제압당한 상황바렌 도망 사건 이후 자코뱅당 내에서 로베스피에르(1758~1794)의 영향하에 입헌주의와 공화주의 사이 대립에서 공화주의가 우세해졌음.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적인 귀족과 상층 부르주아지 중심으로 한 입헌군주주의의 옹호자들은 급진적인 자코뱅클럽을 떠나 따로 페이앙클럽을 조직. 분립 속에서 179110월에 새 헌법에 의해 입법의회가 개회한 것임. 굳이 따지자면 자코뱅클럽이 좌파였고, 페이앙클럽이 우파.

“179110월 새로운 헌법에 의거하여 선출된 입법의회가 개회하였다. 로베스피에르의 제안에 따라 제헌의회, 즉 국민의회 의원이 제외되었기 때문에 새로 선출된 의원은 다 신인이었다.” 처음에 입법의회의 구성을 보면 보면 페이앙클럽이 다수를 점하는 형세였습니다. 페이앙은 260여 석, 자코뱅 130여 석이고, 나머지 340여 석은 평원파로서 자리를 나눠먹었음. 나눠먹은 쪽은 힘이 없으니, 페이앙클럽이 다수당.

 

자코뱅이 급진 좌파라면, 지롱드파는 온건 좌파. 지롱드파가 개혁에 있어서 온건한 성향을 지닌 쪽. 대표적인 인물로서 지롱드 파 지도자인 법철학자 브리소라는 인물이 있음. 지롱드 지방 출신자들이 많았던 지롱드파는 중도 성향인 평원파 의원들을 포섭하면서 입법의회의 주도권을 잡음. “브리소는 입법의회 초기부터 이념적인 혁명전쟁, 자유의 십자군을 주장하였다. 혁명전쟁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친정인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절대주의체제에 철퇴를 가하고, 아울러 프랑스 국내의 왕실과 귀족들의 반혁명음모를 드러내게 할 것이라는 것이 브리소의 주장이었다. 17923월에 내각을 조직한 [지롱드의] 브리소 파는 420일 오스트리아에 대하여 선전포고했고,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편에 가담하였다. 23년이나 계속될 대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때에 불쌍한 루이 16세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서로 전쟁 방향을 강구하고 있을 때에도, 프랑스 내부의 혁명들이 다시 무마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음. 어쨌건 오스트리아가 파리를 향해 진격해들어올 때, 베르됭이 함락될 무렵에 루이 16세의 절대주의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은 더욱더 커졌을 것임.

 

현재 당파 : [자코뱅 - 페이앙 - 지롱드]

 

1. 1792420일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

2. 428~58일에 전투 패배 및 오스트리아 령 벨기에 공격 실패

3. 국왕 내외의 작전계획 적국 누설 의혹 발생

4. 68, 의회가 의용병 2만으로 파리 연맹군 창설 결정

5. 612, 행정수반으로서 국왕의 거부권 행사.

6. 620, 국왕에 반발한 시위대 왕궁 난입.

7. 711, 의회의 조국이 위기에 처했다선언. 조국의 위기라는 불가피한 상황은 국왕의 거부권 행사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에, 긴급조치는 공포할 수 있게 됨.

 

이런 속에서 민족주의가 점점 결속이 되는데, 이들이 각지에서 점점 애국심으로 단결하여, 각지에서 혁명의 심장 파리와 하나가 되고, 그들과 동맹 및 연합하고자 올라온 부대 이름을 -페데레혹은 연맹군이라고 하였음. 프랑스 남부에서 올라오는 마르세유의 연맹군이 라인 주둔군 군가를 부르면서 파리에 입성을 하는데, 이 군가의 명칭이 마르세유 사람들의 노래라는 뜻으로, ‘라 마르세예즈가 되었음. 그래서 그 가사가 매우 전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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