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한국근대사 정리노트]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2) 갑신정변

취미와 문화 2021. 5. 26. 21:25
반응형

[갑신정변]

1. 김옥균의 위기 - 차관도입 실패 : 조청수륙무역장정으로 친청파와 동도서기론자들이 득세하고,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는 수세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김옥균은 상황을 타개하고 개혁을 하기 위해 일본에 넘어가 차관을 얻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차관 도입은 실패하고 더더욱 핀치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김옥균이 계속해서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 등과 교류를 하게 되는데, 일본 입장에서는 김옥균이 정보원으로서 쓸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어떻게 하면 청과 조선의 관계를 끊고 대륙으로 진출할 발판을 마련할 지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2. 청불전쟁에서 청의 패전 - 일본의 기회 : 청불전쟁은 베트남을 두고 청나라와 불란서(프랑스)가 쟁탈전을 벌인 전쟁입니다. 청불전쟁에서 청이 수세에 몰리니 일본 입장에서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일본 공사 다케조에가 정변을 지원해주리라 확답을 줍니다. 조선에서 정변을 일으키면 청이 여유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청불전쟁 때 청나라는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 3000명 중 절반을 철수시켰다고 합니다. 갑신정변이 만일 성공한다면, 조선에서 일본의 우위는 따놓은 당상이었습니다.

 

'3. 갑신정변의 실패 - 3일 천하 : 그러나 정변을 일으키고 망하기를, '3일천하'였습니다. 김옥균 등이 다케조에에게 약속을 받고 정변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그 계획은 생각보다 치밀하게 구성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변이 시작되는 자리가 우정국 개국 축하 연회였는데, 우정국 개국 만찬에서 정변이 일어날 때, 본래 시작이 우정국 별궁에 방화를 하는 걸로 시작하려 했는데, 방화부터 실패하게 됩니다. 아쉬운대로 우정국 주변 민가에서 방화를 하고 정변을 시작합니다."(이경원) 불이 났으니 정변이 시작되는데, 김옥균과 서광범은 약속한 대로 일본 공사에게 일본군 지원을 요청합니다. 

 

김옥균, 서광범 등은 품고 있던 연필과 서양 종이를 꺼내어 '일사내위(日使內衛; 일본 공사는 와서 호위하라)'의 넉 자를 쓰고 인신(印信)의 증거도 없이 일본 공관에게 보냈다. - 박은식<<한국통사>> ; 뿌샘 - 근대 편. 

 

사실 이 정변의 첫 번째 목표는 친청파, 사대파인 민씨 세력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국가재정을 쥐락펴락하던 민씨 세력은 독일 귀족 출신 묄렌도르프를 재정고문으로 데려다가 전횡을 부리고 있었지요. 애초에 차관 도입은 이 친청파, 사대파에 대한 견제였던 것이고, 차관 도입이 무산되자 김옥균은 더욱 위기에 몰렸던 것이지요.

물론 민씨 척족들을 사대파라고 부르는 것은 친일파인 김옥균의 관점이었습니다. 일본 측에서는 갑신정변을 성공할 때에 민씨 척족들이 방해꾼으로 보였습니다. 민씨 척족들은 골수 친청파로서 이들을 남겨두는 이상 한반도 침략은 물건너가니 말이죠.

"개화파는 왕인 고종을 먼저 자기들 보호 아래에 두고자 했습니다. 갑신정변 주도세력이 창덕궁으로 가서 고종을 만납니다. 그리고 고종에게 우리가 정변을 일으켰으니, 위험한 상황이니 신변보호를 위해 경우궁으로 이동하시라 제안을 합니다. 경우궁도 창덕궁 주변에 있었는데, 순조의 생모를 모신 사당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우궁으로 고종이 옮겨가게 됩니다. 그 때 군 지휘관, 민씨 세력들이 정변에 대한 소식을 듣고 경우궁으로 오는데, 그 때 갑신정변 주도세력들이 군지휘관들과 민씨세력들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나서 갑신정변 주도세력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신정권을 수립하고,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이유는 고종이 불편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창덕궁에서 혁신정강을 발표합니다."(이경원) 그런데 애초에 창덕궁에서 개화파의 3일천하 신정부를 건설하게 한 것은 명성왕후의 음모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뿌샘 근대편을 저술하신 김태웅 교수님께서는, 청나라 군인들이 이 신정부를 토벌하는 데에 더 수월하다는 의도를 품은 채 다케조에 신이치로를 유도했다는 것이지요. 

어쨌건 개화파의 신정부는 혁신정강을 발표합니다. 

 

1. 대원군을 즉시 환국하도록 할 것(청국에 대한) 조공 허례는 의논하여 폐지함 [임오군란 때 청 측에 납치된 흥선대원군을 다시 돌려달라는 것인데, 청나라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제정하고, 사람에게 관직을 택하게 하고 관직으로써 사람을 택하지 말 것 [재능에 의거한 인재등용]
3. 전국적으로 지조법(地租法)을 개혁하여 아전들의 부정을 막고 백성의 곤경을 구제하며, 더불어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할 것 [삼정의 문란 퇴치]
4. 내시부(內侍府)를 혁파하고, 그 가운데 우수한 재능이 있는 자는 등용할 것 [왕권 약화]
5. 전후로 부정하여 나라를 병들게 한 것이 두드러진 자는 정죄(定罪)할 것 
6. 각 도의 환상(환곡)은 영구히 중단할 것 [환상 : 환곡을 갚게 함]
7. 규장각을 혁파할 것 [규장각은 왕실도서관으로서 각종 행사 주관. 왕권 약화]
8. 급히 순사(巡査)를 두어 도둑을 막을 것 
9. 혜상공국(惠商公局)을 혁파할 것 [보부상 단체 이권단체 폐기, 자유경쟁 추구, 자유로운 상업 발전 추구]
10. 전후로 유배간 자와 금고(禁錮)된 자는 그 사정을 고려하여 석방할 것
11. 4영(營)을 합하여 하나의 영으로 하고, 영 중에서 장정을 뽑아 근위대를 급히 설치할 것(육군대장은 우선 세자궁(世子)으로 한다) [전후영은 서양식 군사훈련, 좌우영은 중국식 군사훈련. 전후영, 좌우영 폐기. 전후좌우 영을 민씨 척족이 통제했는데, 이걸 없앤다는 것은 민씨에 대한 견제.]
12. 무릇 국내 재정은 모두 호조가 관할하고, 그 외의 모든 재정 관청은 폐지할 것 [선혜청, 병조 등 부가적 재정 운영기관이 빚어내는 폐해를 방지하고 호조로 재정 일원화, 왕실재정까지 호조에서 관할 - 왕권약화]
13. 대신과 참찬(새로 임명한 6명은 지금 그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은 매일 합문(閤門) 안의 의정소(議政所; 의정부)에서 의논하여 아뢰어 결정하고, 정령(政令; 법규)을 반포해 시행할 것 
14. 의정부와 6조 외에 무릇 불필요한 관청은 모두 혁파하고, 대신과 참찬으로 하여금 참작 협의하여 아뢰도록 할 것 [의정부 중심의 조선 초의 방식 회복, 재상들의 협치 중시, 왕권약화]
-『갑신일록』

 

이 정변 소식이 청나라에 전달되어 청에서 바로 군사를 파견합니다. 창덕궁에서 갑신정변 세력을 호위하는 군사들과 청 간에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김옥균이 고종에게 말하길, 인천으로 가서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자고 합니다. 그러자 고종은 거절합니다. 그리고 다케조에도 후퇴하게 됩니다. 결국 김옥균은 일본 공사관으로 후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 참조 : kocw 이경원 한국근현대사회의 역사와 문화, 뿌샘 - 근대 편. 우리역사넷.

 

반응형